북유럽 신화와 전설

북유럽 신화 3. 아스크와 엠블라 | 신들은 왜 나무로 인간을 만들었을까?

신화기담 호월 2026. 8. 26. 13:00

북유럽 신화(Norse mythology / 北欧神話)의 아스크와 엠블라(Askr and Embla / アスクとエムブラ)는 최초의 인간 남녀로 전해지는 존재입니다.

 

안녕하세요, 이야기를 모으는 여우 호월입니다.

세계는 이미 만들어져 땅과 바다가 있었고, 그 위로 하늘이 펼쳐져 있었습니다.

인간은 어떻게 만들어졌다고 전해지는 걸까요?

 

※ 아스크와 엠블라의 인간 창조 이야기는 《구 에다》의 《무녀의 예언》과 스노리의 《산문 에다》(이후 《신 에다》)에서 세부 내용이 다르게 전해집니다. 이번 본편은 서사가 비교적 구체적인 《신 에다》의 '길피의 속임수' 9장을 중심으로 구성했으며, 다른 전승은 이야기 뒤에서 따로 살펴봅니다. 일부 연결 묘사는 이해를 위한 재구성이지만 원전에 없는 장면을 사실처럼 덧붙이지 않았습니다.

 


인간이 없던 세계

이미르의 몸으로 세계는 이미 만들어져 있었습니다.

땅과 바다, 하늘과 인간이 살아갈 미드가르드까지 마련되었지만 아직 그곳에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앞선 북유럽 신화 1편 — 세계 창조, 북유럽 신화 2편 — 이미르의 죽음과 세계 형성에서 신들이 세계를 만들었다면, 이제 그 세계에 살아갈 존재가 등장할 차례였습니다.


바닷가에서 발견한 두 나무

보르의 세 아들이 바닷가를 따라 걷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그들은 두 개의 tré를 발견했습니다.

 

신들은 그 두 tré를 취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인간으로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tré는 문맥에 따라 나무 자체뿐 아니라 나무 재료를 가리킬 수도 있기 때문에, 그것이 정확히 어떤 상태였는지까지는 알 수 없습니다. 원전은 그 두 tré가 어떤 모습의 나무였는지 더 설명하지 않습니다.

뿌리를 내린 두 그루였는지, 바닷가에 놓인 목재였는지도 알 수 없습니다.
다만 분명한 것은, 신들이 그 두 나무를 그냥 지나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무슨 창작욕이라도 생긴 것인지, 그 자리에서 인간을 만들기 시작합니다.


아직 인간이 아니었던 존재

그들은 아직 살아 있는 인간이 아니라, 두 개의 나무 형상에 가까운 존재였습니다.

생명도, 생각할 힘도, 세상을 느낄 감각도 갖고 있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세 신은 그들에게 부족한 것을 하나씩 채워 주었습니다.


첫 번째 선물 — 숨과 생명

첫 번째 신이 두 존재에게 숨과 생명을 주었습니다.

스노리의 이야기에서 이 첫 번째 신은 오딘입니다.

 

아무런 생명도 없던 두 존재에게 처음으로 생명이 깃들었지만,

아직 인간으로 완성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두 번째 선물 — 지성과 움직임

두 번째 신이 나섰습니다.

그는 두 존재에게 지성과 움직임을 주었습니다.

 

이제 그들은 생각하고 스스로 움직일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아직 세상을 바라볼 수도, 소리를 들을 수도, 자신의 생각을 말로 전할 수도 없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신이 그 부족한 것들을 채웠습니다.

스노리의 이야기 흐름에서 이 두 번째 신은 오딘의 형제 빌리(Vili)입니다.


세 번째 선물 — 모습과 말, 청각과 시각

세 번째 신 베(Vé)는 두 존재에게 인간다운 모습을 주었습니다.

그리고 을 주었습니다.

 

귀는 소리를 들을 수 있게 되었고, 눈은 세상을 바라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생명을 얻고,

생각하고 움직이며,

이제 보고 듣고 말할 수 있게 된 두 존재.

 

바닷가에서 발견된 두 형상은 그렇게 하나씩 인간의 모습을 갖추어 갔습니다.

 

인간에게 필요한 능력을 갖춘 뒤, 신들은 두 사람에게 옷까지 주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그들을 부를 이름을 정했습니다.


아스크와 엠블라

신들은 남자에게 이름을 주었습니다.

아스크(Askr).

 

그리고 여자에게도 이름을 주었습니다.

엠블라(Embla).

 

북유럽 신화의 최초 인간 남녀가 그렇게 탄생했습니다.

신들은 두 사람에게 미드가르드를 거처로 주었고, 스노리는 그들에게서 인간들이 이어졌다고 전합니다.

그렇게 신들이 만든 세계에는 마침내 인간의 이야기가 시작되었습니다.

 

잠깐, 아담과 이브 이야기와 비슷하지 않나요?
아스크와 엠블라 이야기는 기독교 《창세기》의 인간 창조와 닮아 보이는 부분이 있습니다.
아담은 흙으로 만들어진 뒤 신에게 생명을 부여받고, 아스크와 엠블라는 나무에서 시작해 신들에게 생명과 여러 능력을 받습니다.

다만 북유럽 신화에서는 여러 신이 인간에게 서로 다른 능력을 나누어 준다는 차이가 있습니다. 또한 이런 유사성만으로 두 전승의 직접적인 영향 관계를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아스크(Askr)는 고대 노르드어로 일반적으로 물푸레나무(ash tree)를 뜻합니다.
그래서 아스크는 물푸레나무와 연결된 이름으로 보는 것이 비교적 분명합니다.

반면 엠블라(Embla)가 정확히 어떤 나무를 뜻하는지는 확실하지 않습니다.
느릅나무와 연결하는 해석도 있지만, 학자들 사이에서 완전히 합의된 것은 아닙니다

흥미롭게도 북유럽 신화에서 세계를 떠받치는 위그드라실 역시 흔히 거대한 물푸레나무로 설명하는데,
이것만으로 아스크가 위그드라실에서 나온 나무였다고 볼 근거는 없습니다.


아스크와 엠블라의 후일담

아스크와 엠블라가 이후 어떤 삶을 살았는지는 거의 전해지지 않습니다.

스노리가 분명하게 전하는 것은 두 사람이 미드가르드에 살게 되었고, 그들에게서 인류가 이어졌다는 점입니다.

 

어쩌면 지금은 사라진 수많은 구전 이야기 가운데 두 사람의 이야기도 있었는지 모릅니다.

하지만 적어도 현재 남아 있는 기록에서는 그들의 이후 이야기를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북유럽 신화를 읽다 보면 이렇게 중요한 신이나 인물인데도 이야기가 중간중간 비어 있는 경우를 자주 만나게 됩니다.

심지어 훗날 등장할 북유럽 신화의 대표적인 여신 프레이야조차 그 중요도에 비해 그녀를 중심으로 한 서사는 충분히 남아 있지 않습니다.

수많은 이야기가 기록되기 전에 사라졌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 조금 아쉬운 일입니다.


앞의 이야기는 스노리 스투를루손의 《신 에다》 가운데 《길피의 속임수》 9장을 중심으로 구성했습니다.

그런데 더 오래된 핵심 자료 가운데 하나인 《구 에다》의 《무녀의 예언》(Völuspá / 볼루스파) 17~18연으로 돌아가 보면 이야기는 조금 달라집니다.

《무녀의 예언》에서는 무엇이 다를까?

《무녀의 예언》에서는 오딘·회니르·로두르가 아스크와 엠블라를 발견합니다.

장소도 스노리처럼 바닷가라고 하지 않고, 땅 또는 육지에서 발견했다고 전합니다.

 

그리고 중요한 차이가 하나 더 있습니다.

《무녀의 예언》는 아스크와 엠블라를 두 나무라고 직접 말하지 않습니다.

두 존재는 힘이 거의 없고 아직 인간에게 필요한 능력을 갖추지 못한 상태로 등장하며, 세 신은 이들에게 생명의 숨결과 정신적 능력, 신체와 외형에 관련된 요소를 나누어 줍니다.

 

원문에는 önd, óðr처럼 정확한 번역이 쉽지 않은 표현도 사용됩니다.

《무녀의 예언》에서는 오딘이 önd, 즉 숨과 생명의 기운을 주고, 회니르가 óðr, 즉 정신과 사고의 능력을 주었다고 전합니다.

《무녀의 예언》에서는 오딘·회니르·로두르가 등장하지만, 스노리의 《신 에다》에서는 앞선 문맥을 따라 오딘·빌리·베가 인간을 만든 것으로 전합니다.

두 세 신의 조합을 서로 연결하려는 해석도 있지만, 원전에서는 이들이 같은 존재라고 직접 설명하지는 않습니다.
스노리는 오늘날 《구 에다》에 남아 있는 것과 같은 옛 시적 전승뿐 아니라 당시 전해지던 여러 신화 자료를 바탕으로 이야기를 정리했습니다. 때문에 《신 에다》의 오딘·빌리·베 이야기가 단순히 ‘틀린 버전’이라고 볼 필요는 없습니다.
서로 다른 전승을 반영한 것인지, 스노리가 여러 전승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진 차이인지는 지금으로서는 확실히 알기 어렵습니다.

 


신들은 왜 나무로 인간을 만들었을까?

이제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왜 신들은 인간을 나무에서 만들었을까요?

 

가장 확실한 답은 '알수 없다' 입니다.

스노리의 이야기에서 나무가 최초 인간의 재료로 등장하는 것은 분명하지만, 왜 그것을 선택했는지는 말해주지 않습니다.

 

길을 가다 발견한 나무를 보고 갑자기 창작욕이 생겼던 것인지, 처음부터 어떤 이유로 나무를 선택했던 것인지도 알 수 없습니다.

아스크와 세계수 위그드라실이 모두 물푸레나무와 연결된다는 점에서 둘 사이의 관계를 떠올려볼 수도 있지만, 원전에서 두 존재를 직접 연결하지는 않습니다.

 

선택의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신들이 그 존재를 어떻게 인간으로 완성하는지는 비교적 자세히 보여줍니다.

생명을 주고,

생각하고 움직일 힘을 주고,

세상을 보고 듣고 말할 수 있는 능력을 더합니다.

따라서 아스크와 엠블라의 이야기는 인간을 여러 능력이 결합되어 비로소 완성되는 존재로 묘사한다고 조심스럽게 읽어볼 수 있습니다.

 

물론 이것을 고대 노르드인의 확정된 인간관이나 철학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어쩌면 아스크와 엠블라 신화에서 더 흥미로운 질문은 “왜 인간의 재료가 나무였을까?”보다 “그 나무에 무엇이 더해져야 인간이 되는가?”인지도 모릅니다.

 

결국 이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무엇이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가?”라는 질문으로도 이어집니다.

북유럽에서 물푸레나무는 꽤 특별한 나무였습니다.
아스크(Askr)라는 이름은 물푸레나무를 뜻하며, 세계수 위그드라실 역시 흔히 거대한 물푸레나무로 설명됩니다.
실제 북유럽과 게르만 문화에서도 물푸레나무는 단단하면서 탄성이 좋은 목재로 여러 도구와 무기에 사용되었습니다.
인간의 시작을 상징하는 아스크와 세계의 중심인 위그드라실에 모두 물푸레나무가 등장한다는 점은 흥미롭습니다.

다음 이야기 — 위그드라실과 아홉 세계

아스크와 엠블라가 살게 된 미드가르드는 북유럽 신화 세계의 전부가 아니었습니다.

다음 이야기에서는 미드가르드를 비롯한 여러 세계와 그 중심에 놓인 거대한 세계수 위그드라실(Yggdrasill)을 살펴보겠습니다.


참고 자료

1차 자료

  • 《무녀의 예언》(Völuspá), 17~18연
  • Snorri Sturluson, Edda: Gylfaginning, ch. 9

주요 연구·참고서

  • Anthony Faulkes, Edda: Prologue and Gylfaginning
  • Anders Hultgård, “The Askr and Embla Myth in a Comparative Perspective”
  • Carolyne Larrington, The Poetic Edda
  • John Lindow, Norse Mythology: A Guide to the Gods, Heroes, Rituals, and Beliefs
  • Rudolf Simek, Dictionary of Northern Mytholog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