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신화 외전 2. 《티타노마키아》 | 사라진 티탄 전쟁 서사시에는 어떤 이야기가 있었을까?
우리가 알고 있는 티타노마키아는 정말 고대 그리스인들이 전한 유일한 티탄 전쟁 이야기였을까요?

안녕하세요, 이야기를 모으는 여우 호월입니다.
헤시오도스의 《신통기》에 전해지는 티타노마키아 말고도,
고대에는 아예 《티타노마키아》라는 제목의 별도 서사시가 존재했습니다.
하지만 그 작품은 지금은 사라졌고, 오늘날 남아 있는 것은 다른 고대 저자들이 옮겨 적은 몇 줄의 운문과 주석, 그리고 여러 문헌 속에 흩어진 흔적뿐입니다.
그렇다면 이 조각들을 모으면 우리는 잃어버린 티탄 전쟁의 또 다른 모습을 어디까지 되살릴 수 있을까요?
※ 소실 서사시 《티타노마키아》는 완전한 원전이 남아 있지 않습니다. 이번 글은 필로데모스, 아테나이오스, 아폴로니오스 로디오스 및 호메로스 주석 등에 남은 《티타노마키아》의 단편과 증언을 중심으로 구성하며, 《결박된 프로메테우스》·핀다로스·의사 아폴로도로스 등 다른 고대 티탄 전쟁 전승은 별도로 구분해 다룹니다. 현대 단편집에서 추정 귀속된 자료는 확정 내용으로 사용하지 않으며, 사라진 작품의 빈 부분을 임의로 이어 완성된 줄거리로 재구성하지 않습니다.
사라진 서사시 《티타노마키아》
헤시오도스의 《신통기》에서 티탄들은 오트리스산에, 제우스와 새로운 신들은 올림포스에 자리 잡고 맞섭니다.
전쟁은 열 해 동안 이어지고, 마지막에는 제우스의 벼락과 헤카톤케이레스의 참전이 승부를 결정합니다.
오늘날 티타노마키아를 이야기할 때 가장 먼저 떠올리는 장면들입니다.
그래서 앞선 본편에서도 현존하는 가장 중요한 자료인 헤시오도스의 《신통기》를 중심으로 전쟁의 흐름을 살펴봤습니다.
그런데 고대에는 이와 별도로 아예 《티타노마키아》(Titanomachia / ティタノマキア)라는 제목의 서사시가 있었습니다.
문제는 그 책이 지금은 남아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손에 쥔 것은 완성된 원전이 아니라 다른 고대 저자들이 옮겨 적은 몇 줄,
학자와 주석가가 남긴 짧은 설명, 그리고 후대 문헌 속에 흩어진 흔적뿐입니다.
《티타노마키아》라는 작품 자체는 후대의 추정이 아니라,
필로데모스, 아테나이오스, 아폴로니오스 로디오스 주석, 호메로스 주석,
클레멘스 알렉산드리누스 등 여러 고대 문헌과 주석에 나타나는, 실제로 존재했던 서사시입니다.
저자는 보통 코린토스의 에우멜로스(Eumelus of Corinth / エウメロス)로 알려져 있지만,
그가 진짜 저자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
아테나이오스는 《티타노마키아》의 시인을 언급하면서 에우멜로스인지 아르크티노스인지,
또는 다른 누구인지 확신하지 못하는 태도를 보이는데, 이는 고대 전승에서도 저자가 불확실했음을 보여줍니다.
작품의 정확한 분량도 알 수 없습니다.
다만 아테나이오스가 《티타노마키아》의 ‘제2권’에서 운문을 인용하기 때문에 적어도 두 권 이상이었다는 사실은 확인할 수 있습니다.
정확히 두 권짜리였다는 뜻은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작품의 이름보다 남아 있는 파편인데,
첫 번째 조각부터 이미 헤시오도스와 다른 세계가 모습을 드러냅니다.
시작부터 헤시오도스와 달랐다 — 아이테르와 우라노스
헤시오도스의 《신통기》는 카오스에서 시작합니다.
그 뒤에 가이아, 타르타로스, 에로스 등이 나타나고, 가이아는 스스로 별이 가득한 우라노스를 낳습니다.
하지만 소실된 《티타노마키아》를 전하는 자료에서는 출발점이 다릅니다.
필로데모스가 보존한 증언에 따르면 《티타노마키아》의 시인은 모든 것이 아이테르에서 나왔다고 말했습니다.
또 후대의 문법·주석 전통에는 우라노스를 ‘아이테르의 아들’이라고 하는 계보가 남아 있습니다.
이 두 조각만으로 작품의 완전한 우주론을 복원할 수는 없습니다.
아이테르가 정확히 어떤 방식으로 세계의 기원이 되었는지, 그 뒤 가이아와 다른 신들이 어떤 순서로 등장했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적어도 이 작품의 신통기적 서두가 헤시오도스와 달랐다는 점은 분명히 드러납니다.
즉 소실된 《티타노마키아》는 헤시오도스의 전투 장면을 단순히 늘여 쓴 작품이 아니라,
신들의 기원부터 다른 전승을 담고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티탄 편에서 싸운 바다의 거인 아이가이온
사라진 《티타노마키아》의 전쟁과 관련해 가장 선명하게 남은 흔적 중 하나는,
아이가이온(Aigaion / アイガイオン)입니다.
아폴로니오스 로디오스의 작품에 달린 주석에는,
에우멜로스가 《티타노마키아》에서 아이가이온을 가이아와 폰토스의 아들로 만들었으며,
그가 바다에 살면서 티탄들과 함께 싸웠다고 전합니다.
여기서는 작품명 《티타노마키아》가 직접 언급됩니다.
따라서 아이가이온이 티탄 편에 섰다는 내용은 소실된 서사시와 연결되는 전쟁 정보 가운데 비교적 강하게 확인되는 조각입니다.
이 대목이 흥미로운 이유는 헤시오도스의 브리아레오스를 떠올리게 하기 때문입니다.
《신통기》에서 브리아레오스는 코토스, 기게스와 함께 백 개의 팔을 가진 헤카톤케이레스입니다.
제우스가 그들을 해방하고, 세 거인은 마지막 전투에서 수많은 바위를 퍼부으며 티탄들을 무너뜨립니다.
그런데 다른 고대 전승에서는 브리아레오스와 아이가이온이라는 이름이 서로 연결되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다른 판본에서는 브리아레오스가 티탄 편으로 돌아섰다’고 단순화하면 곤란합니다.
《티타노마키아》의 아이가이온은 가이아와 폰토스의 아들로 전해지지만,
헤시오도스의 브리아레오스는 가이아와 우라노스의 아들로 계보부터 다릅니다.
우리가 말할 수 있는 것은 여기까지입니다.
헤시오도스에서는 브리아레오스가 제우스의 강력한 동맹이지만,
《티타노마키아》를 명시한 주석에는 아이가이온이라는 바다의 거인이 티탄 편에서 싸웠다고 전합니다.
그가 전투에서 무엇을 했고 어떻게 되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전쟁 밖의 이야기까지 담겨 있었다
제목만 보면 《티타노마키아》는 티탄과 새로운 신들의 전쟁만을 다룬 작품처럼 느껴지지만,
남아 있는 단편은 그보다 넓은 소재를 보여줍니다.
아테나이오스가 남긴 한 구절에서는 제우스가 다른 이들 가운데에서 춤추는 장면이 나타납니다.
이를 승전 축하 장면으로 보는 해석도 있지만, 현존 문맥만으로 어느 시점의 춤인지 확정할 수는 없습니다.
태양신과 관련된 파편도 남아 있습니다.
호메로스 주석에서는 《티타노마키아》의 저자가 태양의 마차를 끄는 네 말을 수컷 둘과 암컷 둘로 설명했다고 전합니다.
아테나이오스는 《티타노마키아》에 태양이 밤에 대양을 건널 때 솥이나 가마솥 같은 배를 이용한다는 이야기가 있다고 전합니다.
키론 관련 전승도 있습니다.
아폴로니오스 로디오스의 주석에는 ‘기간토마키아’에서 크로노스가 말의 모습으로 변해 필리라와 결합하고, 그 사이에서 키론이 태어났다는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다만 현대 편집자들은 여기의 ‘기간토마키아’를 문맥상 《티타노마키아》의 오류로 보는 경우가 있어 텍스트 비평상의 주의가 필요합니다.
클레멘스 알렉산드리누스가 보존한 다른 운문에서는 《티타노마키아》의 시인이 키론을 인간에게 맹세와 희생, 올림포스의 표징을 가르친 존재로 전했다고 합니다.
또 아테나이오스는 《티타노마키아》 제2권에 나와있다는 황금빛 모습을 한 말 못 하는 물고기들이 신성한 물에서 헤엄치며 노는 운문을 인용하지만 이 장면의 정확한 맥락은 알 수 없습니다.
남아 있는 단편만 놓고 보면 《티타노마키아》는 전쟁만을 다룬 작품은 아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우주기원과 신들의 계보, 태양의 운행, 키론 관련 전승 등도 이 작품과 연결되어 전해집니다.
다만 이 조각들이 원래 어떤 순서로 놓여 있었는지, 작품 전체가 어떤 구조였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필리라(Philyra / Φιλύρα)는 그리스 신화에서 오케아노스와 테튀스의 딸로 전해지는 오케아니스,
즉 바다의 님프 계열 존재로 켄타우로스 현자 키론의 어머니로 유명합니다.
비슷한 모티프 — 크로노스와 로키의 말 변신
그리스 신화에서는 크로노스가 말의 모습으로 변해 필리라와 결합하고, 그 사이에서 키론이 태어납니다.
북유럽 신화에서는 로키가 암말로 변해 스바딜파리와 관계를 맺고, 직접 슬레이프니르를 낳습니다.
두 전승 모두 신적 존재의 말 변신과 특별한 후손의 탄생이라는 점에서는 닮아 있지만, 구체적인 구조는 크게 다릅니다.
이 유사성이 공통된 신화적 배경에서 나온 것인지는 별도의 비교 연구가 필요합니다.

우리가 흔히 아는 세부 내용은 어디서 왔을까?
오늘날 티타노마키아를 설명하는 글에는 헤시오도스의 《신통기》에 나오지 않는 장면도 자주 등장합니다.
대표적인 것이 캄페와 세 형제의 무기입니다.
의사 아폴로도로스의 《도서관》에서는 전쟁이 열 해 동안 이어진 뒤 가이아의 조언에 따라 제우스가 타르타로스의 포로들을 해방합니다.
제우스는 감시자 캄페를 죽이고, 키클롭스들은 제우스에게 벼락, 포세이돈에게 삼지창, 하데스에게 보이지 않게 하는 투구를 줍니다.
현대 단편 편집자 가운데 일부는 이런 내용이 소실 서사시와 관계되었을 가능성을 검토해 추정 단편으로 두지만,
현재 남아 있는 인용만으로 이것이 소실된 《티타노마키아》의 직접적인 내용이라고 하기는 힘듭니다.
전쟁 뒤 제우스·포세이돈·하데스가 지배 영역을 제비뽑는 장면도 같은 주의가 필요합니다.
따라서 여기서는 ‘고대에 존재한 다른 티탄 전쟁 전승’과 ‘소실된 《티타노마키아》의 확실한 내용’을 구분할 필요가 있습니다.
프로메테우스와 티탄의 또 다른 전쟁 기억
헤시오도스 밖으로 시선을 넓히면 티탄 전쟁은 더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그중 대표적인 사례가 《결박된 프로메테우스》입니다.
이 작품에서 프로메테우스는 신들의 내전이 벌어졌을 때 티탄들에게 힘만 믿지 말고 계략을 쓰라고 권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티탄들은 그의 말을 받아들이지 않았고, 프로메테우스는 결국 제우스 편에 서서 승리를 돕습니다.
이 장면은 고대 문헌에서 직접 확인되는 또 다른 티탄 전쟁 전승입니다.
한편 헤시키오스의 사전에는 프로메테우스를 ‘티탄들의 전령’이라고 설명하는 별도 전승이 남아 있습니다.
현대 편집자들은 이를 《티타노마키아》와 연결될 가능성이 있는 추정 단편으로 다루기도 하지만,
헤시키오스 자체는 작품명을 밝히지 않으므로,
두 자료를 합쳐 소실 《티타노마키아》의 연속 줄거리로 만드는 것은 무리가 있습니다.
또 하나 흥미로운 자료는 핀다로스인데,
《피티아 송가》 4편에서 핀다로스는 제우스가 티탄들을 풀어주었다고 노래합니다.
헤시오도스의 《신통기》에서는 패배한 티탄들의 타르타로스 감금이 강하게 남지만,
고전기에는 제우스가 티탄들을 석방했다는 별도 전승도 존재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다만 이것 역시 소실 《티타노마키아》의 결말이라는 증거는 없습니다.

단편의 숫자조차 하나가 아니다
그렇다면 《티타노마키아》의 단편은 몇 개나 남아 있을까요?
이 질문에도 하나의 숫자로 답하기 어렵습니다.
Bernabé의 PEG, Davies의 EGF, West의 《Greek Epic Fragments》, Tsagalis의 《Early Greek Epic Fragments I》는 무엇을 확실한 단편으로 보고, 무엇을 추정으로 배치할지 조금씩 다르게 판단합니다.
어떤 편집판은 작품명이 직접 언급된 인용을 중심으로 비교적 보수적으로 묶고,
다른 편집판은 작품명을 밝히지 않더라도 관련 가능성이 있는 자료까지 별표를 붙여 검토합니다.
그래서 ‘《티타노마키아》의 단편이 정확히 19개 남아 있다’처럼 단정하면 오해가 생길 수 있습니다.
직접 인용, 간접 증언, 작품 귀속이 불확실한 자료, 현대 편집자의 추정 배치가 한 목록 안에 함께 들어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읽는 소실 서사시 단편집은 한 권의 찢어진 책을 페이지 순서대로 다시 맞춘 것이 아닙니다.
여러 고대 저자와 주석가가 남긴 조각을 현대 연구자들이 비교하고 작품별로 분류한 결과에 가깝습니다.
결국 우리는 사라진 《티타노마키아》를 어디까지 복원할 수 있을까?
이제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남은 파편을 모으면 또 하나의 완전한 티타노마키아를 복원할 수 있을까요?
대답은 ‘아니오’에 가깝지만 아무것도 모르는 것은 아닙니다.
비교적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것
- 고대에는 《티타노마키아》라는 별도의 서사시가 알려져 있었습니다.
- 이 작품은 보통 에우멜로스가 쓴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고대부터 누가 쓴 작품인지 분명하지 않았습니다.
- 아테나이오스의 제2권 인용 때문에 최소 두 권 이상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 아이테르 중심의 신통기적 계보와 우라노스를 아이테르의 아들이라 하는 전승이 남아 있습니다.
- 아이가이온은 가이아와 폰토스의 아들이며 바다에 살면서 티탄 편에서 싸웠다고 《티타노마키아》를 명시한 주석이 전합니다.
- 태양과 키론 등 전쟁 밖의 소재도 작품과 연결되어 전해집니다.
가능성은 있지만 단정하면 안 되는 것
- 제1권이 우주기원, 제2권이 본격적인 전쟁과 전후 질서를 다뤘다는 복원.
- 제우스의 춤이 승전 직후의 축하 장면이었다는 해석.
- 의사 아폴로도로스의 캄페, 세 형제의 무기, 세계 분할 등이 소실 《티타노마키아》에서 유래했다는 추정.
- ‘티탄들의 전령’ 프로메테우스 전승이 이 작품에 속했다는 추정.
현재 자료로 알 수 없는 것
- 작품의 전체 줄거리와 사건 순서.
- 정확한 총 권수와 분량.
- 소실 작품 속 전쟁의 정확한 기간과 전장.
- 양측의 전체 참전자와 헤카톤케이레스의 역할.
- 아이가이온의 구체적인 활약과 최후.
- 프로메테우스가 작품에 등장했는지, 등장했다면 어떤 역할이었는지.
- 패배한 티탄들의 최종 운명과 작품의 마지막 장면.
우리는 파편을 통해 잃어버린 책의 몇 장면을 바라볼 수 있지만,
그 사이의 빈칸을 마음대로 메우는 순간, 복원은 창작이 됩니다.
그리고 바로 그 빈칸이 중요한 사실 하나를 보여줍니다.
헤시오도스에서는 가이아가 우라노스를 낳지만, 다른 전승에서는 우라노스가 아이테르의 아들이었습니다.
헤시오도스에서는 브리아레오스가 제우스의 강력한 동맹이지만, 소실 서사시에는 아이가이온이라는 바다의 거인이 티탄 편에 섰습니다.
《결박된 프로메테우스》에서는 프로메테우스가 계략을 중시하며 제우스를 돕고,
핀다로스에서는 제우스가 티탄들을 풀어줍니다.
같은 신들의 과거를 두고도 고대 그리스인들은 서로 다른 이야기를 전하고 있었습니다.
사라진 《티타노마키아》는 우리가 알고 있는 그리스 신화가 하나의 정본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창문에 가깝습니다.
이야기 뒤의 《티타노마키아》
이번 글에서는 자료를 크게 세 층으로 나누어 살펴봤습니다.
첫째, 《티타노마키아》라는 작품명이나 그 시인을 직접 언급하는 고대 인용과 주석입니다.
둘째, 《결박된 프로메테우스》와 핀다로스처럼 다른 고대 문헌에 남은 독립적인 티탄 전쟁 전승입니다.
셋째, 의사 아폴로도로스의 캄페와 세 무기처럼 고대 전승으로서는 중요하지만,
이것이 소실된 《티타노마키아》의 내용이라는 근거는 없습니다.
왜 헤시오도스와 다른 이야기가 있었을까?
전승에서 확인되는 사실
헤시오도스의 《신통기》와 소실 《티타노마키아》를 전하는 증언은 우주기원부터 차이를 보입니다.
《신통기》에서는 카오스가 먼저 등장하고 가이아가 우라노스를 낳지만,
《티타노마키아》 계열 증언은 아이테르에서 만물이 나왔고 우라노스를 아이테르의 아들이라 전합니다.
아이테르는 누구일까?
아이테르(Aither)는 그리스 신화에서 신들이 머무는 밝고 맑은 상층 하늘, 또는 그 하늘을 신격화한 원초적 존재입니다.
헤시오도스의 《신통기》에서는 에레보스와 닉스의 자식으로 등장하지만,
《티타노마키아》 계열 증언에서는 만물이 아이테르에서 시작되고 우라노스도 그의 아들로 전해집니다.
즉 이 전승은 헤시오도스와 우주의 시작 계보 자체가 다릅니다.
연구자들의 해석
현대 연구에서는 이런 차이를 단순히 어느 한쪽이 틀렸다는 문제가 아니라,
서로 다른 지역과 시적 전통이 신들의 과거를 각기 다른 방식으로 조직했을 가능성,
공통된 구전 전승에서 서로 다른 계보가 발전했을 가능성 등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특히 에우멜로스의 작품들과 코린토스 전승의 관계를 중심으로 《티타노마키아》를 해석하려는 연구도 있습니다.
생각해볼 수 있는 점
우리는 가장 유명하게 남은 문헌을 ‘원래 이야기’처럼 받아들이기 쉽습니다.
하지만 소실 《티타노마키아》의 파편은 그리스 신화가 여러 시인과 지역,
시대를 거치며 다른 모습으로 이야기되었음을 보여줍니다.
사라진 책을 읽는다는 것은 잃어버린 정답을 찾는 일이라기보다,
한때 존재했던 여러 가능성의 흔적을 확인하는 일이 아닐까요?
다른 티탄 전쟁 전승과 비교해 보면
| 문헌·전승 | 확인되는 특징 | 주의할 점 |
| 헤시오도스 《신통기》 | 카오스 계보, 오트리스-올림포스 대치, 10년 전쟁, 헤카톤케이레스 참전 | 현존 자료 가운데 티탄 전쟁의 핵심 비교 기준 |
| 소실 《티타노마키아》 | 아이테르 중심 우주기원, 티탄 편의 아이가이온, 태양·키론 관련 단편 | 전체 전쟁 순서는 복원 불가 |
| 의사 아폴로도로스 《도서관》 | 캄페, 키클롭스 해방, 세 무기, 세계 분할 | 소실 《티타노마키아》의 직접 내용으로 확정 불가 |
| 《결박된 프로메테우스》 | 프로메테우스의 전략 제안과 제우스 편 합류 | 소실 《티타노마키아》 직접 단편이 아님 |
| 핀다로스 《피티아 송가》 4편 | 제우스가 티탄들을 석방했다는 전승 | 소실 서사시의 결말이라고 볼 근거 없음 |
이 차이는 어느 한 문헌이 다른 문헌보다 ‘진짜’라는 뜻이 아닙니다.
같은 신화적 사건이 서로 다른 문학과 전승 속에서 여러 방식으로 이야기되었다는 뜻에 가깝습니다.
과연 신들과 거인의 전쟁이 정말로 있었다면 그 진짜 모습은 어땠을까요?
잃어버린 신화를 바라보는 일은 어쩌면 과거를 복원하는 일이라기보다,
우리가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세계에 다시 질문을 던지는 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신화의 빈자리는 때로, 남아 있는 이야기보다 더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합니다.

참고 자료
A. 고대 원전·주석·증언
- 헤시오도스, 《신통기》(Theogony).
- 의사 아폴로도로스, 《도서관》(Bibliotheca) 1.2.1, 1.2.3.
- 《결박된 프로메테우스》(Prometheus Bound), 약 199~226행.
- 핀다로스, 《피티아 송가》 4편 289~291행.
- 필로데모스, 《경건에 관하여》(De pietate / On Piety).
- 아테나이오스, 《학자들의 향연》(Deipnosophistae) 1.22c; 7.277d; 11.470b–c.
- 아폴로니오스 로디오스 1.1165c 주석; 1.554 주석.
- 호메로스 《일리아스》 23.295b 주석.
- 클레멘스 알렉산드리누스, 《스트로마타》(Stromata) 1.73.3.
- 헤시키오스, 《사전》(Lexicon), s.v. Ithas/Ithax.
B. 현대 단편집·연구서
- Alberto Bernabé, 《Poetarum Epicorum Graecorum: Testimonia et Fragmenta, Pars I》, 1987.
- Malcolm Davies, 《Epicorum Graecorum Fragmenta》, 1988.
- Martin L. West, 《Greek Epic Fragments: From the Seventh to the Fifth Centuries BC》, Harvard University Press, 2003.
- Martin L. West, “Eumelos: A Corinthian Epic Cycle?”, 《Journal of Hellenic Studies》 122, 2002.
- Christos Tsagalis, 《Early Greek Epic Fragments I: Antiquarian and Genealogical Epic》, de Gruyter, 2017.
- Timothy Gantz, 《Early Greek Myth: A Guide to Literary and Artistic Sources》, Johns Hopkins University Press, 1993.
- Robert L. Fowler, 《Early Greek Mythography, Vol. II: Commentary》, Oxford University Press, 20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