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그드라실(Yggdrasil / ユグドラシル)은 북유럽 신화(Norse mythology / 北欧神話)에서 여러 공간과 존재, 운명과 죽음의 영역이 교차하는 거대한 세계수입니다. 원전에는 실제로 ‘아홉 세계’라는 표현이 등장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익숙하게 보는 9개의 세계 목록과 정확한 위그드라실 지도는 어느 한 고대 문헌에 완성된 형태로 적혀 있지 않습니다.

안녕하세요, 이야기를 모으는 여우 호월입니다.
앞선 이야기에서 아스크와 엠블라를 통해 인간의 탄생을 살펴봤다면, 이번에는 한 걸음 더 나아가 그 인간들이 살아가는 미드가르드와 북유럽 신화의 더 큰 세계 구조를 바라볼 차례입니다.
눈앞에 상상하기 어려울 만큼 거대한 나무 한 그루가 서 있다고 생각해 보세요.
가지 위에는 이름 없는 독수리가 앉아 있고, 그 두 눈 사이에는 매 한 마리가 자리합니다.
줄기를 따라 다람쥐가 위아래로 달리고, 가지 사이에서는 네 마리 사슴이 잎을 뜯습니다.
뿌리 아래에서는 니드호그와 여러 뱀이 나무를 갉습니다.
더 깊은 곳에는 샘과 운명을 정하는 존재들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거대한 나무에는 우리가 알고 있는 아홉 세계가 정말 하나씩 매달려 있었던 걸까요?
※ 위그드라실과 북유럽 신화의 우주 구조는 하나의 고정된 원전에 완성된 형태로 정리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번 글은 《구 에다》의 《무녀의 예언》·《그림니르의 말》·《바프스루드니르의 말》과 스노리 스툴루손의 《신 에다》 중 《길피의 속임수》를 중심으로 구성합니다. 서로 다른 문헌의 설명은 후반에서 구분하며, 장면 연결을 위한 묘사는 일부 재구성했습니다.
태고의 무녀가 기억한 ‘아홉 세계’
아직 지금의 세상이 모습을 갖추기 전.
한 무녀가 아주 오래된 기억을 더듬습니다.
그녀가 기억하는 것은 지금 살아 있는 인간들의 시대가 아닙니다.
오래전 자신을 길러 준 거인들과, 세계가 아직 젊었던 때의 기억입니다.
그리고 그 기억 속에서 한 표현이 나타납니다.
‘아홉 세계.’
《무녀의 예언》 2연에 거대한 나무를 가리키는 표현과 함께 등장합니다.
하지만 이 아홉 세계들의 정확한 이름이나 배치가 기록되어있진 않습니다.

우르드의 샘 위에 선 위그드라실
시선은 나무의 뿌리 쪽으로 내려갑니다.
그곳에는 우르드의 샘(Urðarbrunnr / ウルズの泉)이 있습니다.
그 샘 위로 높이 솟은 거대한 나무가 위그드라실입니다.
원전에서는 이 나무를 일반적으로 ‘물푸레나무’로 번역되는 askr라고 부릅니다.
《무녀의 예언》 19~20연에서는 위그드라실과 우르드의 샘이 언급되고,
이어 세 명의 처녀 우르드(Urðr), 베르단디(Verðandi), 스쿨드(Skuld)의 이름이 나타납니다.
이들은 사람들의 삶과 운명에 관계하는 존재들로 묘사됩니다.
스노리 스툴루손의 《신 에다》 중 《길피의 속임수》에서는 이 세 존재를 노른(Nornir)으로 더 분명하게 정리하며,
우르드의 샘 곁에 머물면서 인간의 운명을 정하고 위그드라실을 돌보는 존재들로 설명합니다.
후대에는 우르드·베르단디·스쿨드를 각각 과거·현재·미래와 대응시키는 설명도 널리 알려졌지만,
《무녀의 예언》이나 스노리의 설명이 세 존재의 역할을 그런 식으로 정확히 나누어 제시하는 것은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세계수의 뿌리 곁에 운명과 법, 그리고 세계 질서를 유지하는 존재들이 자리한다는 점입니다.
노른(Nornir)이란?
북유럽 신화에서 인간과 신들의 운명에 관여하는 초자연적 존재들을 가리킵니다.
노른은 우르드·베르단디·스쿨드 세 명만을 뜻하는 말이 아닙니다.
스노리의 《신 에다》에서는 많은 노른들이 존재하며, 어떤 노른은 신족에서, 어떤 노른은 엘프족에서, 또 어떤 노른은 드베르그 계통에서 온다고 설명합니다. 이들은 사람이 태어날 때 찾아와 그 삶과 운명을 정하는 존재들로 묘사됩니다.
그중에서도 우르드(Urðr), 베르단디(Verðandi), 스쿨드(Skuld)가 가장 유명하며, 우르드의 샘 곁에 머무는 세 노른으로 특별히 강조됩니다.
따라서 노른은 흔히 말하는 ‘운명의 세 여신’ 그 자체라기보다, 북유럽 신화에서 운명을 정하고 배분하는 존재들의 한 부류라고 이해하는 편이 더 정확합니다.

신들은 왜 세계수로 향했을까?
《그림니르의 말》에서는 신들이 날마다 회합을 위해 이동하는 모습이 나타납니다.
스노리의 《길피의 속임수》에서는 이 장면이 더 체계적으로 정리되는데,
신들은 비프로스트를 지나 우르드의 샘 곁에 있는 법정으로 향합니다.
원전에서 세계수 주변은 멀리 떨어진 상징적 공간으로만 그려지지 않습니다.
신들이 모이고, 법과 질서가 작동하며, 운명의 존재들이 자리한 장소로도 나타납니다.
하지만 나무 아래로 더 내려가면 분위기가 달라집니다.
거대한 뿌리들이 서로 다른 방향으로 뻗고 있습니다.
비프로스트(Bifröst)란?
북유럽 신화에서 신들이 이동하는 다리이자 하늘과 땅을 잇는 경계적 통로입니다.
스노리의 《신 에다》에서는 신들이 비프로스트를 건너 우르드의 샘 곁 회합 장소로 향한다고 설명합니다.
흔히 ‘무지개다리’로 알려져 있지만, 단순히 아스가르드와 미드가르드를 잇는 직통 다리라고만 이해하기보다는 세계의 서로 다른 영역을 연결하는 신들의 통로로 보는 편이 더 정확합니다.
라그나로크 때에는 이 다리가 무너지는 전승도 나타납니다.

위그드라실의 세 뿌리는 어디로 향했을까?
《그림니르의 말》 31연은 위그드라실의 세 뿌리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한 뿌리 아래에는 헬이 있고, 다른 뿌리 아래에는 서리거인들이 있으며, 또 하나는 인간들이 있는 쪽으로 이어집니다.
여기서 보이는 세계수는 가지 끝마다 세계가 하나씩 매달린 정교한 지도라기보다 서로 다른 존재 영역으로 뻗어 가는 거대한 중심축에 가깝습니다.
그런데 스노리의 《길피의 속임수》는 이 세 뿌리를 똑같이 설명하지 않습니다.
스노리는 한 뿌리를 신들 쪽, 하나를 서리거인 쪽, 또 하나를 니플헤임 쪽으로 설명하고, 우르드의 샘·미미르의 샘·흐베르겔미르를 함께 연결합니다.
같은 하나의 세계수이지만 뿌리의 목적지가 다릅니다. 이 차이는 뒤에서 다시 살펴보겠습니다.
지금은 나무의 줄기로 올라가 보겠습니다.
거기에는 북유럽 신화에서 가장 바쁜 다람쥐가 있습니다.
헬(Hel)과 영어 hell은 같은 말일까?
영어 hell과 북유럽 신화의 Hel은 서로 어원적으로 연결된 게르만어 계통의 말입니다.
원래는 대체로 ‘가려진 곳’ 또는 ‘숨겨진 곳’과 관련된 의미에서 발전한 것으로 봅니다.
하지만 북유럽 신화의 헬과 기독교의 지옥은 같은 개념이 아닙니다.
북유럽 신화의 Hel은 죽은 자의 영역을 가리키는 말로 쓰이며, 반드시 죄인이 불 속에서 형벌받는 장소를 뜻하지는 않습니다.
오늘날 영어 hell이 갖는 ‘죄인이 벌받는 지옥’의 의미는 이후 기독교적 사후세계 개념과 결합하면서 강해졌습니다.
정리하면: Hel과 hell은 같은 어원 계통이지만, 북유럽 신화의 헬 = 기독교의 지옥은 아닙니다.

세계수를 오르내리는 라타토스크와 니드호그
라타토스크(Ratatoskr / ラタトスク)는 위그드라실의 줄기를 쉴 새 없이 오르내립니다.
나무 위에는 거대한 독수리가 앉아 있습니다.
《그림니르의 말》은 그 독수리의 이름을 알려 주지 않습니다.
그리고 나무 아래에는 위그드라실의 뿌리를 갉는 거대한 뱀,
니드호그(Níðhöggr / ニーズヘッグ)가 있습니다.
라타토스크는 그 둘 사이를 오가며 말을 전합니다.
스노리의 설명에서는 라타토스크가 독수리와 니드호그 사이에 서로를 헐뜯는 말을 전달한다고 전합니다.
위와 아래.
독수리와 니드호그.
그 사이를 바쁘게 오가는 작은 다람쥐.
거대한 우주수 한가운데에 이런 장면이 있다는 것이 위그드라실 이야기의 묘한 매력입니다.
여기서 자주 생기는 오해가 하나 있습니다.
베드르폴니르(Veðrfölnir)는 세계수 꼭대기의 독수리 이름이 아닙니다.
스노리의 《길피의 속임수》에서 그는 독수리의 두 눈 사이에 앉아 있는 매입니다.
원전은 그가 그곳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지는 설명하지 않습니다.
니드호그가 아래에서 세계수를 갉고, 이름 없는 독수리가 꼭대기에 자리하며, 라타토스크가 둘 사이에 적의 섞인 말을 나른다는 구조는 마치 서로 다른 힘이 세계수의 위아래에서 긴장 관계를 이루는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다만 원전은 이것이 세계수를 보호하기 위한 장치라거나, 독수리가 니드호그와 실제로 싸운다고 설명하지는 않습니다.

네 사슴과 뱀들, 끊임없이 갉아먹히는 세계수
가지 사이에는 네 마리 사슴이 있습니다.
다인(Dáinn), 드발린(Dvalinn), 두네위르(Duneyrr), 두라스로르(Duraþrór).
그들은 위그드라실의 잎과 가지를 먹고,
아래에서는 니드호그와 여러 뱀들이 뿌리를 갉습니다.
세계의 중심에 선 나무조차 아무런 상처 없이 보존되는 것은 아닙니다.
후대에는 네 사슴을 사계절이나 네 방향과 연결하는 해석도 있었지만,
에다의 원문은 그들을 봄·여름·가을·겨울의 상징이라고 설명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계속 갉아먹히는 위그드라실은 어떻게 서 있을 수 있을까요?
상처 입는 나무를 돌보는 노른
스노리의 《길피의 속임수》는 이 질문에 하나의 장면을 덧붙입니다.
우르드의 샘 곁에 있는 노른들은 샘의 물과 진흙을 가져다가 세계수에 끼얹습니다.
나무가 썩거나 마르지 않도록 돌보는 것입니다.
아래에서는 뿌리가 갉히고, 위에서는 가지와 잎이 뜯기지만,
그 사이에서 누군가는 계속 나무를 돌보며,
파괴와 유지가 동시에 이어집니다.
위그드라실은 완벽하게 고정된 세계보다 상처 입고도 계속 유지되는 세계를 떠올리게 합니다.
물론 이것은 이야기 구조에서 읽을 수 있는 의미이며, 원전이 직접 선언한 교리는 아닙니다.
그리고 이제 처음의 질문이 다시 돌아옵니다.
이 살아 있는 세계수와 ‘아홉 세계’는 실제로 어떻게 연결되어 있을까요?

그렇다면 아홉 세계는 어디에 있을까?
아스가르드, 미드가르드, 요툰헤임, 바나헤임…….
오늘날 북유럽 신화를 소개하는 책이나 게임, 영상에서는 아홉 세계를 깔끔한 목록과 지도로 정리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어떤 그림에서는 위그드라실의 가지와 뿌리에 세계들이 정확히 하나씩 배치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원전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습니다.
《무녀의 예언》은 ‘아홉 세계’를 기억하지만 이름 목록을 주지 않습니다.
《그림니르의 말》은 세 뿌리와 세계수 주변 존재들을 자세히 노래하지만 9개 세계를 쭉 열거하지 않습니다.
《바프스루드니르의 말》 역시 ‘아홉 세계’를 언급하지만, 그 문맥은 니플헬과 죽음의 영역에 대한 지식과 연결됩니다.
스노리의 《길피의 속임수》에도 ‘아홉 세계’라는 표현이 나오지만, 우리가 익숙하게 보는 현대식 9세계 표는 제시하지 않습니다.
즉, ‘아홉 세계’라는 개념과 여러 장소명은 실제 원전에 존재합니다.
다만 그것들을 하나의 고정된 명단으로 묶고,
위그드라실의 가지와 뿌리에 정확히 배치한 지도는 후대의 정리와 가설을 섞어 재구성한 체계에 가깝습니다.
그 의문을 남긴 채 세계의 끝으로 가 보겠습니다.
라그나로크에 흔들리는 세계수
라그나로크가 다가옵니다.
질서가 무너지고 신들과 거인들의 마지막 충돌이 가까워집니다.
《무녀의 예언》 47연에서는 오래된 나무가 떨고 신음합니다.
위그드라실도 종말의 흔들림에서 벗어나 있지 않습니다.
다만 니드호그가 라그나로크 때 위그드라실을 최종적으로 쓰러뜨렸다거나,
수르트(Surtr, 불과 파괴에 연결된 강력한 거인)의 불에 세계수가 완전히 사라졌다고 단정할 수 있는 원전 서사는 없습니다.
원전이 분명히 보여 주는 것은 세계수의 떨림과 신음입니다.
우주 전체를 가로지르는 나무가 흔들리는 순간, 세계의 질서 자체도 함께 흔들리는 듯합니다.
그렇다고 종말이 완전한 소멸로 끝나는 것도 아닙니다.
다른 원전에서는 라그나로크 이후에도 살아남는 인간들이 등장하며, 세계가 다시 이어질 가능성을 보여 줍니다.
세계는 무너지고 다시 이어집니다.
그리고 라그나로크의 순간에도 위그드라실은 정지된 지도라기보다 흔들리고 고통받는 살아 있는 우주의 중심으로 묘사됩니다.
위그드라실은 북유럽 신화의 여러 영역과 운명·법·지혜·죽음이 만나는 거대한 중심 이미지였습니다.
라그나로크에서 살아남은 인간은?
《바프스루드니르의 말》에서는 리프(Líf)와 리프트라시르(Lífþrasir)라는 두 인간이 라그나로크를 살아남는다고 전합니다.
이들은 호드미미스 홀트(Hoddmímis holt)라는 숲에 몸을 숨기며 살아남습니다. 일부 연구에서는 이 장소를 위그드라실과 연결해 해석하기도 하지만, 원전이 호드미미스 홀트와 위그드라실을 직접 같은 곳이라고 밝히지는 않습니다.

이야기 뒤의 위그드라실과 아홉 세계
앞에서 읽은 이야기는 《구 에다》의 《무녀의 예언》·《그림니르의 말》·《바프스루드니르의 말》과 스노리 스툴루손의 《신 에다》 중 《길피의 속임수》를 바탕으로 재구성했습니다.
위그드라실과 북유럽 신화의 우주 구조에 관한 정보는 여러 시와 산문에 흩어져 있습니다.
그래서 어떤 자료를 중심으로 보느냐에 따라 구조가 조금씩 달라집니다.
| 원전·문헌 | 주요 특징 |
| 《무녀의 예언》 | 2연에서 ‘아홉 세계’를 언급하고, 19~20연에서 위그드라실·우르드의 샘·세 처녀를 보여 줍니다. 47연에서는 라그나로크 때 세계수가 떨고 신음합니다. |
| 《그림니르의 말》 | 신들의 이동, 세 뿌리, 라타토스크, 네 사슴, 여러 뱀과 니드호그 등 세계수 주변의 모습을 구체적으로 보여 줍니다. |
| 《바프스루드니르의 말》 | 바나헤임을 직접 언급하고, 43연에서 ‘아홉 세계’를 니플헬과 죽음 세계의 문맥에서 말합니다. 45연에는 리프와 리프트라시르의 생존이 나타납니다. |
| 《길피의 속임수》 | 세 뿌리와 세 샘, 노른의 관리, 동물들을 체계적으로 정리합니다. 다만 세 뿌리의 배열은 《그림니르의 말》과 다르며, 34장에는 헬의 권한과 관련해 ‘아홉 세계’가 언급됩니다. |
《그림니르의 말》과 《길피의 속임수》는 세 뿌리를 어떻게 다르게 설명할까?
이 차이는 이번 글에서 가장 중요하게 기억할 부분입니다.
《그림니르의 말》 31연에서는 세 뿌리 아래를 헬(Hel), 서리거인들(hrímþursar), 인간으로 말합니다.
반면 스노리의 《길피의 속임수》 15장에서는 세 뿌리가 향하는 곳을 다르게 설명합니다.
한 뿌리는 신들이 있는 쪽으로, 하나는 서리거인들이 있는 쪽으로, 나머지 하나는 니플헤임 쪽으로 뻗어 있습니다.
그리고 스노리는 이 세 방향에 각각 중요한 샘을 연결합니다. 신들 쪽에는 우르드의 샘(Urðarbrunnr), 서리거인 쪽에는 미미르의 샘(Mímisbrunnr / ミーミルの泉), 니플헤임 쪽에는 흐베르겔미르(Hvergelmir / フヴェルゲルミル)가 있습니다.
따라서 두 자료를 합쳐 하나의 ‘원래 정답 지도’처럼 만들면 판본 차이가 사라집니다.
스노리의 체계적인 설명은 현대 도식의 바탕이 되기 쉽지만, 이전의 시 전승을 그대로 반복한 것은 아닙니다.
위그드라실과 아홉 세계는 어떻게 연결되어 있을까?
위그드라실은 북유럽 신화의 여러 영역과 존재를 연결하는 우주적 중심입니다.
‘아홉 세계’라는 표현 역시 《무녀의 예언》, 《바프스루드니르의 말》, 《길피의 속임수》에서 실제로 확인됩니다.
하지만 현존 대표 원전에는 아홉 개 이름을 한 번에 열거한 공식 명단도, 각 세계가 세계수의 어느 가지와 뿌리에 놓이는지 보여 주는 정확한 좌표도 없습니다.
그래서 오늘날 널리 알려진 9세계 지도는 여러 중세 자료에 흩어진 장소와 표현을 바탕으로, 후대의 정리와 가설을 섞어 재구성한 체계로 보는 편이 좋습니다.
위그드라실은 무엇을 의미할까?
원전에서 확인되는 사실
위그드라실 주변에는 신들의 회합과 법, 우르드의 샘과 노른, 그리고 여러 동물이 함께 등장합니다.
사슴들은 가지와 잎을 먹고, 니드호그와 여러 뱀은 뿌리를 갉습니다.
스노리의 《길피의 속임수》에서는 노른들이 우르드의 샘물과 진흙으로 세계수를 돌보며,
《무녀의 예언》에서는 라그나로크가 다가올 때 오래된 나무가 떨고 신음하는 모습이 나타납니다.
이야기 구조에서 읽을 수 있는 의미
이 장면들을 함께 보면 위그드라실은 신과 인간, 거인과 죽음의 영역, 운명과 법이 교차하는 중심처럼 보입니다.
또한 세계수는 끊임없이 훼손되면서도 돌봄을 받습니다.
이런 모습은 북유럽 신화의 세계가 완전히 고정된 질서라기보다, 계속 흔들리고 유지되는 질서였다고 생각해 볼 여지를 줍니다.
다만 이것은 원전이 직접 설명한 교리가 아니라 이야기 구조에서 읽을 수 있는 해석입니다.
현대 연구에서는 어떻게 볼까?
현대 신화·종교 연구에서는 위그드라실을 흔히 ‘세계수’ 또는 axis mundi,
즉 서로 다른 영역과 층위를 이어 주는 우주적 중심축이라는 관점에서 해석합니다.
다른 문화권의 신성한 나무나 우주 기둥과 비교되기도 하지만,
이러한 유사성만으로 서로 같은 기원에서 나왔거나 직접적인 문화적 관계가 있었다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다음 이야기 — 아스 신족과 바니르 신족의 전쟁
위그드라실과 아홉 세계를 살펴보다 보면 ‘바나헤임’이라는 이름을 만나게 됩니다.
《바프스루드니르의 말》에는 바나헤임(Vanaheimr)이 실제로 등장합니다.
그리고 그곳과 연결된 바니르 신족은 한때 아스 신족과 전쟁을 벌였습니다.
창세와 인간의 탄생을 지나 세계의 구조까지 살펴봤다면, 이제 그 세계 안에서 신들이 충돌하기 시작합니다.
다음 편에서는 북유럽 신화 5. 아스 신족과 바니르 신족의 전쟁을 살펴보겠습니다.
참고 자료
1차 자료
- 《무녀의 예언》(Völuspá) — 특히 2, 19~20, 47연
- 《그림니르의 말》(Grímnismál) — 특히 29~35연
- 《바프스루드니르의 말》(Vafþrúðnismál) — 특히 39, 43, 45연
- Snorri Sturluson, 《신 에다》 중 Gylfaginning — 특히 15~16, 34, 53장
원전 번역·비평판
- Carolyne Larrington, trans., *The Poetic Edda*, Oxford World’s Classics, rev. ed., 2014.
- Ursula Dronke, *The Poetic Edda, Vol. II: Mythological Poems*, Oxford University Press, 1997.
- Snorri Sturluson, *Edda: Prologue and Gylfaginning*, ed. Anthony Faulkes, Viking Society for Northern Research.
2차 자료
- John Lindow, *Norse Mythology: A Guide to Gods, Heroes, Rituals, and Beliefs*, Oxford University Press, 2001.
- Rudolf Simek, *Dictionary of Northern Mythology*, trans. Angela Hall, D. S. Brewer, 19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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