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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전 따라가기/북유럽 신화

북유럽신화 원전 따라가기1. 《무녀의 예언》 1~6연 | 원전에는 정말 “아무것도 없었다”고 적혀 있을까?

by 신화기담 호월 2026. 9. 6.

《무녀의 예언》(Völuspá)은 북유럽 신화(Norse mythology / 北欧神話)를 대표하는 에다 시가 가운데 하나입니다.

이번 글에서는 그 시작인 1~6연을 실제 원문 순서대로 읽으며, 태초의 세계와 이미르, 미드가르드, 태양·달·별, 그리고 시간의 질서가 원전에서 어떻게 나타나는지 살펴보겠습니다.

 

 

안녕하세요, 이야기를 모으는 여우 호월입니다.
북유럽 창세신화에서는 이미르의 탄생과 죽음,

그리고 그의 몸으로 만들어진 세계가 하나의 이야기처럼 이어집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아는 “아무것도 없던 태초”는 《무녀의 예언》에 어떻게 적혀 있을까요?

 

 

※ 《무녀의 예언》은 Codex Regius(R)와 Hauksbók(H) 등 서로 다른 전승으로 남아 있습니다. 이번 글은 Codex Regius의 1~6연을 중심 본문으로 삼고, Hauksbók와 스노리 스투를루손의 《신 에다》 인용은 별도 비교 자료로 구분합니다. 아래 고대 노르드어는 R의 독법을 중심으로 정규화해 제시하며, 한국어 번역은 원문의 의미와 리서치의 어휘 검토를 바탕으로 새로 옮겼습니다. 현대 편집자의 영어 번역이나 주석을 그대로 옮기지 않았으며, 원전에 없는 대화·심리·사건은 덧붙이지 않습니다.

※ 필사본 표기
이 글에서 R은 《무녀의 예언》이 전하는 주요 필사본인 Codex Regius, H는 또 다른 주요 전승본인 Hauksbók를 뜻합니다.
두 필사본은 같은 작품을 전하지만, 일부 구절의 단어나 표현이 서로 다릅니다.

1연 — 무녀가 가장 오래된 기억을 열다

Hljóðs bið ek allar kindir,
meiri ok minni, mǫgu Heimdallar!
Vildu at ek, Valfǫðr, vel fyr telja
forn spjǫll fira, þau er fremst um man.

 

“크고 작은 모든 족속들이여,
헤임달의 자손들이여, 내 말에 귀 기울이라.
발포드여, 그대가 바라시니,
내가 가장 아득히 기억하는 인간들의 옛이야기를 전하리라.”

이 시는 세계가 만들어지는 장면부터 시작하지 않습니다.
먼저 한 목소리가 청중을 부릅니다. 그리고 자신이 아주 오래전의 일을 기억한다고 선언합니다.
여기서 Valfǫðr(발포드)는 오딘을 가리키는 이명입니다. 하지만 1연의 중심은 오딘의 행동이 아니라 무녀의 발화 권위입니다.
지금부터 들려줄 것은 누군가에게 전해 들은 최근 이야기가 아니라, 기억이 닿는 가장 먼 과거의 이야기라는 것입니다.

Hauksbók의 같은 구절에는 R에는 없는 'helgar'라는 단어가 들어갑니다.
'helgar'는 ‘신성한’이라는 뜻이므로, 이쪽 전승에서는 ‘모든 신성한 종족들’이라는 표현이 됩니다.
다만 이번 글은 R을 중심으로 읽기 때문에, Hauksbók에만 있는 표현을 본문 번역에 섞어 넣지는 않겠습니다.

2연 — 아홉 세계가 나오지만, 목록은 없다

Ek man jǫtna, ár um borna,
þá er forðum mik fœdda hǫfðu;
níu man ek heima, níu íviðjur,
mjǫtvið mæran, fyr mold neðan.

 

“나는 아득한 옛날 태어난 요툰들을 기억한다,
오래전에 나를 길러 준 그들을.
나는 아홉 세계와 아홉 íviðjur를 기억하고,
땅 아래의 웅대한 mjǫtviðr를 기억한다.”

2연에는 꽤 익숙한 표현이 등장합니다.

바로 '요툰(jǫtunn)'과 ‘아홉 세계(heima)’입니다.
요툰(jǫtunn, 본문의 jǫtna는 활용형)은 흔히 거인으로 번역됩니다.

heima는 세계, 거처, 영역 등의 의미입니다.
《무녀의 예언》에는 분명 ‘아홉 세계(heima)’라는 표현이 나오지만,
그 아홉 곳의 이름을 하나씩 열거하지는 않습니다.

더 중요한 것은 현존하는 다른 북유럽 신화 자료들을 살펴봐도 ‘아홉 세계’의 완전한 목록은 전해지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여러 세계와 영역의 이름은 각각 등장하지만, 정확히 어느 아홉 곳을 가리키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더 어려운 것은 íviðjur로, 뜻이 확실하지 않은 난해어입니다.
여성 거인, 나무나 숲과 관련된 존재 등 여러 해석이 제시되어 왔지만,
정확히 무엇을 가리키는지는 아직 분명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번역에 따라 ‘아홉 여성 거인’, ‘아홉 뿌리’처럼 서로 다르게 옮겨지기도 합니다.

mjǫtviðr는 직역하기 어려운 단어지만,
보통 북유럽 신화의 세계수 위그드라실을 가리키는 표현으로 해석됩니다.
실제로 《무녀의 예언》 뒤쪽에서는 이 나무가 ‘위그드라실’이라는 이름으로 직접 등장합니다.

3연 — “아무것도 없던 때”가 아니라, 이미르가 있던 때

Ár var alda, þar er Ymir bygði;
vara sandr né sær né svalar unnir;
jǫrð fannsk æva né upphiminn,
gap var ginnunga, en gras hvergi.

 

“태고의 시절, 이미르가 살던 그때는
모래도 바다도 차가운 물결도 없었으며,
땅도 위의 하늘도 없었고,
벌어진 공허만 있을 뿐 풀 한 포기 없었노라.”

여기서 이번 글의 첫 번째 핵심이 나옵니다.
Codex Regius의 3연은 þar er Ymir bygði, 곧 ‘이미르가 살던 때’를 노래합니다.

Hauksbók의 같은 구절에도 이미르가 등장합니다.
따라서 두 주요 필사본을 기준으로 3연을 “아무것도 없었다고 말한다”고 정리하는 것은 정확하지 않습니다.
모래도 바다도 파도도 대지도 하늘도 풀도 없었지만, 이미르는 이미 존재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gap var ginnunga라는 표현이 나옵니다.
gap은 ‘틈’이나 ‘벌어진 공간’을 뜻하지만, ginnunga의 정확한 의미는 확실하지 않습니다.
이 표현은 흔히 긴눙가가프와 연결해 이해됩니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스노리의 《신 에다》가 이 3연을 인용할 때는 구절이 달라집니다.
두 주요 필사본의 ‘이미르가 살던 때’ 대신, þat er ekki var, 곧 ‘아무것도 없던 때’라는 표현이 나타납니다.

같은 시구가 서로 다른 형태로 전해진 것입니다.

또 하나 중요한 차이가 있습니다.
《무녀의 예언》 1~6연에는 니플헤임과 무스펠이 등장하지 않고,
차가운 기운과 뜨거운 기운이 만나 이미르가 태어나는 과정도 설명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이미르는 어떻게 태어났을까요?

《무녀의 예언》 1~6연만 읽어서는 알 수 없습니다.

그런데 스노리의 《신 에다》로 넘어가면 이야기가 훨씬 구체적으로 바뀝니다.
니플헤임과 무스펠, 긴눙가가프를 둘러싼 냉기와 열기가 등장하고,
그 과정에서 이미르가 태어났다고 설명합니다.

왜 이런 차이가 생겼는지는 확실하지 않습니다.
스노리가 지금은 남아 있지 않은 다른 전승이나 자료를 알고 있었을 수도 있고,
여러 전승을 하나의 이야기로 정리했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불과 얼음 사이에서 이미르가 태어났다’는 창세 이야기가,
스노리가 자신이 알고 있던 여러 전승을 하나의 연속된 이야기로 정리한 결과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다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하나의 가능성에 대한 개인적인 추측입니다.

4연 — 이미르의 죽음은 어디로 갔을까?

Áðr Burs synir bjǫðum um ypðu,
þeir er Miðgarð mæran skópu;
Sól skein sunnan á salar steina,
þá var grund gróin grœnum lauki.

 

“보르의 아들들이 땅을 들어 올려
웅대한 미드가르드를 세우던 무렵,
해는 남쪽에서 거처의 돌들을 비추었고,
대지에는 푸른 풀이 돋아났도다.”

※ 첫 단어 Áðr는 앞뒤 문장을 어떻게 이어 읽느냐에 따라 해석이 조금 달라질 수 있습니다.
여기서는 문맥을 자연스럽게 잇기 위해 ‘무렵’으로 옮겼습니다.

※ salar steina는 직역하기 까다로운 표현입니다.
salr가 ‘홀·거처’를 뜻하기 때문에 여기서는 ‘거처의 돌들’로 옮겼습니다.

3연에서는 이미르가 등장했습니다.
그런데 4연으로 넘어가면 이야기는 갑자기 보르의 아들들이 대지를 들어 올리고 미드가르드를 만드는 장면으로 이어집니다.

여기서 자연스럽게 궁금해집니다.
“이미르는 어떻게 된 걸까?”
우리가 잘 아는 이야기에서는 보르의 아들들이 이미르를 죽이고, 그의 몸으로 세계를 만듭니다.

하지만 《무녀의 예언》 4연은 그 과정을 설명하지 않습니다.
이미르가 어떻게 죽었는지, 그의 몸이 어떻게 세계의 재료가 되었는지는 말하지 않은 채,
이미 세계가 만들어지고 있는 장면으로 넘어갑니다.

3연에는 땅도 하늘도 풀도 없었습니다.
4연에서는 대지가 생기고 미드가르드가 만들어지며, 햇빛 아래 식물이 자라기 시작합니다.

즉 《무녀의 예언》은 이미르가 존재하던 태초의 세계에서,
미드가르드와 대지가 모습을 갖추는 장면으로 빠르게 건너뜁니다.

5연 — 태양과 달은 이미 있지만, 아직 제자리를 모른다

Sól varp sunnan, sinni Mána,
hendi inni hœgri um himinjódýr;
Sól þat né vissi hvar hon sali átti,
stjǫrnur þat né vissu hvar þær staði áttu,
Máni þat né vissi hvat hann megins átti.

 

“마니(달)의 동반자인 해가 남쪽에서 움직였다.
[둘째 행은 번역을 보류합니다.]
해는 자신의 거처가 어디인지 알지 못했고,
별들은 자신들이 머물 자리를 알지 못했으며,
마니(달)는 자신에게 어떤 힘이 있는지 알지 못했노라.”

둘째 행은 두 필사본에서 단어가 다르게 전해집니다.
한쪽은 ‘하늘의 말’, 다른 쪽은 ‘하늘의 가장자리’에 가까운 해석이 가능할 정도로 뜻이 크게 갈립니다.
그래서 여기서는 어느 한쪽을 정답으로 정하지 않고 번역을 보류했습니다.

이 연에서 중요한 것은 태양과 달과 별이 아직 만들어지지 않았다는 것이 아닙니다.

천체들은 이미 존재합니다.
다만 태양은 자신의 거처를 모르고, 별들은 어디에 자리해야 하는지 모르며,
마니(달) 역시 자신에게 어떤 힘이 있는지 알지 못합니다.

즉 5연이 보여주는 것은 ‘천체가 없는 세계’가 아니라,
천체는 있지만 아직 그 자리와 역할이 정해지지 않은 세계입니다.

6연 — 신들은 시간을 만들었을까, 이름 붙였을까?

Þá gengu regin ǫll á rǫkstóla,
ginnheilǫg goð, ok um þat gættusk:
nótt ok niðjum nǫfn um gáfu,
morgin hétu ok miðjan dag,
undorn ok aptan, árum at telja.

 

“그때 모든 신들이 의논의 자리에 모였고,
지극히 거룩한 신들이 이에 대해 뜻을 모았도다.
밤과 달이 기우는 때에 이름을 붙이고,
아침과 한낮, 낮의 뒤쪽 시간과 저녁을 정하여
해의 흐름을 셀 수 있게 하였도다.”

5연까지 태양과 달과 별은 이미 존재했습니다.
하지만 아직 자신의 자리와 역할을 알지 못했습니다.

6연에서 신들이 모입니다.
그들은 밤과 달이 기우는 때, 아침과 정오, undorn, 저녁에 이름을 붙이고,
해(年)를 헤아릴 수 있는 질서를 세웁니다.

그래서 이 장면은 “신들이 시간을 처음 만들어냈다”기보다는,
이미 흐르고 있던 시간을 나누고 이름 붙여 셀 수 있게 만들었다고 이해하는 편이 원문에 가깝습니다.

여기서 undorn은 하루 중 한 시각을 뜻합니다.
다만 정확히 어느 시간을 가리키는지는 시대와 용례에 따라 달라집니다.
이 연에서는 정오와 저녁 사이에 놓여 있기 때문에 대략 오후의 어느 시각으로 이해할 수 있지만,
현대 시계처럼 ‘오후 3시’라고 정확히 정해진 것은 아닙니다.

이제 1연부터 6연까지 모두 살펴봤습니다.
무녀는 자신의 가장 오래된 기억을 꺼내고, 태고의 요툰과 아홉 세계를 기억합니다.

이미르가 존재하던 원초의 세계가 나타난 뒤,
이야기는 곧바로 대지와 미드가르드가 만들어지는 장면으로 넘어갑니다.
태양과 달과 별은 아직 자신의 자리와 역할을 알지 못하고,
마지막에는 신들이 모여 시간에 이름을 붙이고 셈의 질서를 세웁니다.

그런데 우리가 익숙하게 알고 있는 장면들은 보이지 않습니다.
불과 얼음은 어디에 있을까요?
이미르는 어떻게 죽었을까요?
그의 살과 피와 뼈로 세계를 만들었다는 이야기는 어디에 있을까요?
바로 여기서 《무녀의 예언》 1~6연과 우리가 익숙하게 알고 있는 북유럽 창세신화 사이의 차이가 드러납니다.


《무녀의 예언》 1~6연에서 직접 확인되는 것

  • 이미르
  • gap var ginnunga로 표현된 원초적 공간
  • 보르의 아들들과 미드가르드
  • 태양·달·별의 존재와 아직 정해지지 않은 질서
  • 신들의 회의와 시간 구분의 명명

이 여섯 연에는 직접 나오지 않는 것

  • 니플헤임과 무스펠의 구체적 배치
  • 냉기와 열기의 결합으로 이미르가 생기는 과정
  • 이미르 살해
  • 이미르 시신 해체와 세계 창조의 구체 과정
  • 이미르의 눈썹으로 미드가르드를 만드는 설명
  • 아우둠라와 그녀의 젖을 먹고 살아가는 이미르
  • 아우둠라가 얼음·소금기 있는 돌을 핥아 부리를 드러내는 이야기

다만 ‘이 여섯 연에 없음’은 ‘고대 북유럽 전승에 없음’과 같은 뜻이 아닙니다.

다음에서 다른 에다 시가와 스노리의 산문을 따로 확인합니다.

익숙한 창세 장면은 어디에 있을까?

이 여섯 연에 없다고 해서 그 이야기들이 모두 후대의 창작이라는 뜻은 아닙니다.
이미르의 몸에서 세계가 만들어진다는 모티프는 《고 에다》의 다른 에다 시가에도 남아 있습니다.

 

《그림니르의 말》 40~41연에서는 이미르의 살과 피, 뼈, 두개골, 머리카락 등이,

대지와 바다, 산, 하늘, 나무로 연결되고, 그의 눈썹으로 미드가르드가 만들어졌다는 전승이 나타납니다.

 

《바프스루드니르의 말》 21연 역시 이미르의 몸과 세계의 구성 요소를 얘기합니다.

23~25연에서는 태양과 달, 낮과 밤, 달의 주기와 시간 셈을 별도의 계보와 문답 속에서 설명합니다.

 

그리고 스노리의 《신 에다》는 이런 여러 시가와 전승을 인용하면서,

니플헤임, 무스펠, 긴눙가가프, 이미르의 생성과 죽음, 시신을 이용한 세계 창조, 천체의 배치 등을 훨씬 연속적인 산문 우주론으로 엮습니다.
그러므로 “《무녀의 예언》 1~6연에 없다”고 해서 “고대 북유럽 전승에 없다”는 건 아닙니다.

 

아우둠라가 이미르에게 젖을 먹이고, 얼음을 핥아 부리를 드러내는 이야기는 《고 에다》의 시가에서는 확인되지 않으며,

현재 서사 형태로는 스노리의 《신 에다》에서 전해집니다.


이야기 뒤의 《무녀의 예언》 — 필사본과 합성 창세 서사

앞에서 읽은 1~6연은 하나의 완벽하게 고정된 ‘원본’이 그대로 전해진 것이 아닙니다.
오늘날 우리는 서로 다른 시기의 필사본과 인용 전승을 통해 이 시를 읽습니다.

Codex Regius(R)

이번 글의 중심 판본입니다.

대략 13세기 후반의 아이슬란드 양피지 필사본이며,

《무녀의 예언》은 이 필사본의 첫 시입니다.

1~6연의 기본 순서, 3연의 Ymir, 5연의 himinjódýr 계열 철자가 이번 글의 핵심 기준이 됩니다.

 

다만 이 필사본이 작품의 ‘원작 시기’와 같은 시대의 문서라는 뜻은 아닙니다.

시의 성립은 훨씬 앞선 시기로 논의되며, 정확한 시점은 확정할 수 없습니다.

Hauksbók(H)

《무녀의 예언》의 또 다른 중요한 필사본 전승입니다.

R과 기본 배열은 대응하지만, 곳곳에 의미 있는 차이가 있습니다.
1연의 helgar, 3연 말미의 작은 표현 차이, 5연의 himinjǫður 계열 독법 등이 대표적입니다.

 

중요한 점은 H를 R의 빈칸을 자동으로 메우는 ‘정답지’처럼 쓰지 않는 것입니다.

두 판본은 서로 비교해야 할 전승이지, 마음에 드는 표현만 골라 하나의 문장으로 합칠 자료가 아닙니다.

스노리 스투를루손의 《신 에다》 〈길피의 속임수〉(Gylfaginning)

13세기 초의 체계적인 산문입니다.

스노리는 《무녀의 예언》과 다른 에다 시가를 실제로 인용하지만, 시가 자체와 같은 텍스트 층은 아닙니다.

 

이번 글에서 가장 중요한 차이는 3연입니다.
R과 H에는 ‘이미르가 살던 때’가 있지만, 스노리의 인용에는 ‘아무것도 없던 때’라는 다른 독법이 나타납니다.

 

또 스노리는 니플헤임과 무스펠, 긴눙가가프의 우주 지리, 냉기와 열기의 작용,

이미르의 생성, 시신을 이용한 세계 창조, 천체 배치를 연속적인 이야기로 설명합니다.

《그림니르의 말》과 《바프스루드니르의 말》

이 두 시가는 《무녀의 예언》 1~6연에 없는 창세 모티프가 고대 시가 전승에도 실제로 존재했음을 보여 줍니다.
특히 이미르의 몸이 세계의 재료가 된다는 이야기는 스노리만의 창작이라고 볼 수 없습니다.

 

다만 이 시들의 내용을 《무녀의 예언》 사이에 끼워 넣어 ‘빠진 장면을 복원했다’고 말해서도 안 됩니다.
각 시는 각자의 문맥에서 보존된 별도의 자료입니다.

원전에는 정말 “아무것도 없었다”고 적혀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판본을 밝히지 않고 그렇게 단정하면 부정확합니다.
Codex Regius와 Hauksbók의 3연에는 모두 이미르가 있습니다.

 

R/H의 표현은 ‘이미르가 살던 때’입니다.

반면 스노리가 《신 에다》에서 인용한 전승에는 ‘아무것도 없던 때’라는 의미의 표현, þat er ekki var가 나타납니다.

여기서 어느 쪽이 시인이 처음 노래한 유일한 원문인지는 현재 자료만으로는 알 수 없습니다.
우리가 가진 것은 서로 다른 전승들의 가닥이기 때문입니다.


북유럽 창세신화는 왜 ‘합성 서사’로 보아야 할까?

원전에서 확인되는 사실

《무녀의 예언》 1~6연에는 이미르, 원초적인 gap,

보르의 아들들이 세운 미드가르드, 태양·달·별, 신들의 시간 명명이 있습니다.
하지만 니플헤임과 무스펠의 구체적인 배치, 냉기와 열기가 만나 이미르가 생겨나는 과정,

이미르의 살해와 시신 해체, 그의 눈썹으로 미드가르드를 만드는 구체 과정은 이 여섯 연 안에 직접 나오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그런 모티프가 모두 늦게 만들어졌다는 뜻도 아닙니다.

이미르의 몸으로 세계를 만드는 전승은 《그림니르의 말》과 《바프스루드니르의 말》에서도 확인됩니다.

이야기 구조에서 읽을 수 있는 의미

1~6연을 한 흐름으로 읽으면 이 구간의 창세는 ‘모든 재료가 어디에서 왔는가’를 차례대로 설명하는 매뉴얼과 다릅니다.
무녀의 기억은 원초적인 부재의 상태에서 대지와 미드가르드가 나타나고,

천체가 자리를 찾아가며, 신들이 시간의 구분에 이름을 붙이는 방향으로 움직입니다.

 

그래서 이 여섯 연만 놓고 보면 창세의 초점은 단순히 ‘무언가가 존재하게 되었다’는 데만 있지 않고,
이름, 자리, 경계, 셈의 기준이 생기며 세계가 질서 있는 공간으로 바뀌는 과정이 압축되어 있습니다.
이것이 1~6연의 배열에서 읽을 수 있는 이야기 구조상의 해석입니다.

현대 연구에서는 어떻게 볼까?

Lars Lönnroth는 1~8연을 세계의 현재 질서가 형성되는 과정으로 읽으며,

특히 4연에서 무형의 공간이 미드가르드와 식생이 있는 경관으로 전환되는 변화에 주목합니다.

 

Patricia Pires Boulhosa를 비롯한 본문비평 연구는,

우리가 읽는 ‘원문’ 자체가 필사본과 현대 편집자의 판단을 거쳐 구성된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5연의 himinjódýr/himinjǫður 문제는 이 점을 보여 주는 좋은 사례입니다.

 

작품의 기독교 영향에 대해서도 의견이 분분합니다.

John McKinnell은 기독교적 구전 환경과의 접촉 가능성을 적극적으로 고려하는 반면,

Anders Hultgård는 기독교 영향의 정도를 매우 제한적으로 봅니다.

 

이번 글에서는 어느 한쪽을 정답으로 고르지 않겠습니다.

결국 우리가 익숙하게 알고 있는 북유럽 창세신화는 ‘가짜 이야기’가 아니지만,

하나의 현존 원전이 있어서 처음부터 끝까지 그대로 들려주는 줄거리도 아닙니다.

 

《무녀의 예언》과 다른 에다 시가, 그리고 스노리의 산문에 흩어진 고대 전승을 연결해 읽으면서 만들어진 합성 서사에 가깝습니다.


관련 포스팅

불과 얼음 사이의 긴눙가가프, 니플헤임과 무스펠, 이미르의 탄생이,

하나의 연속적인 창세 이야기로 어떻게 이어지는지 먼저 보고 싶다면,

이전 글 「북유럽 신화 1. 세계는 불과 얼음 사이에서 어떻게 시작됐을까?」를 함께 읽어 보세요.

 

이번 원전 아카이브는 그 대중적인 창세 줄거리를 부정하기 위한 글이 아니라,

그 줄거리의 각 장면이 실제로 어느 고대 자료에 놓여 있는지 한 겹 더 깊게 확인하는 글이었습니다.


다음 이야기 — 《무녀의 예언》 7~8연

1~6연에서 세계는 점차 이름과 자리, 시간의 질서를 얻었습니다.
그다음 《무녀의 예언》은 신들이 이다볼에서 황금으로 풍요롭게 지내는 시기로 넘어갑니다.
하지만 그 질서는 오래 유지되지 않습니다.


세 요툰 여인이 찾아오면서 세계의 분위기가 달라지기 시작합니다.
다음 원전 아카이브에서는 《무녀의 예언》 7~8연 — 신들의 황금기와 세 요툰 여인의 도래를 읽어보겠습니다.


참고 자료

1차 자료

  • GKS 2365 4to, Codex Regius of the Poetic Edda — 《무녀의 예언》 1~6연 중심 필사본.
  • AM 544 4to, Hauksbók, fols. 20r–21r — 《무녀의 예언》 독립 필사본 전승.
  • Snorri Sturluson, Edda: Prologue and Gylfaginning, ed. Anthony Faulkes, 2nd ed., Viking Society for Northern Research, 2005.
  • 《그림니르의 말》(Grímnismál) 40~41연.
  • 《바프스루드니르의 말》(Vafþrúðnismál) 21, 23~25연.

2차 자료 및 기관 자료

  • Edward Pettit, The Poetic Edda: A Dual-Language Edition, Open Book Publishers.
  • Ursula Dronke, The Poetic Edda, Volume II: Mythological Poems, Clarendon Press, 1997.
  • Patricia Pires Boulhosa, “Scribal Practices and Three Lines in Völuspá in Codex Regius,” Gripla 26, 2015.
  • Else Mundal, “Oral or Scribal Variation in Vǫluspá: A Case Study in Old Norse Poetry,” 2008.
  • Judy Quinn, “Editing the Edda — the Case of Völuspá,” Scripta Islandica 51, 2001.
  • Haukur Þorgeirsson, “In Defence of Emendation. The Editing of Vǫluspá,” Saga-Book 44, 2020.
  • Lars Lönnroth, “The Founding of Miðgarðr (Vǫluspá 1–8),” 2002; “Iǫrð fannz æva né uphiminn. A Formula Analysis,” 1981.
  • John McKinnell, “Vǫluspá and the Feast of Easter,” 2008/2014.
  • Anders Hultgård, The End of the World in Scandinavian Mythology, Oxford University Press, 2022.
  • The Árni Magnússon Institute for Icelandic Studies / Handrit.is
  • Bibliothèque nationale de France, Essentiels — Codex Regi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