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려진 공주는 왜 죽음의 세계로 향했을까?

안녕하세요, 이야기를 모으는 여우 호월입니다.
오늘은 오래전 사람들에게 전해 내려온 바리공주의 이야기를 들려드릴게요.
버려진 공주는 왜 다시 왕궁으로 돌아가고, 결국 죽음의 세계까지 향하게 되었을까요?
※ 바리공주 신화는 지역과 전승자에 따라 여러 형태로 전해집니다. 이 글은 서울 지역의 바리공주 전승을 중심으로 여러 자료를 참고하여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이어지도록 재구성했습니다. 등장인물의 일부 대화와 장면 묘사는 이해와 몰입을 돕기 위한 각색입니다.
오래전, 왕위를 이어갈 아들을 기다리는 왕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왕비가 낳은 첫 아이는 공주였습니다. 왕은 다음을 기다렸지만 두 번째 아이도, 세 번째 아이도 딸이었습니다.
기다림은 해마다 이어졌고 어느덧 왕궁에는 여섯 명의 공주가 자라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다시 왕비가 아이를 가졌습니다.
일곱 번째 아이였습니다.
이번만큼은 아들이 태어나리라.
왕은 그렇게 믿었습니다.
긴 기다림 끝에 마침내 산실에서 갓난아이의 울음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왕은 급히 사람을 불러 물었습니다.
“아이가 태어났느냐?”
“그러하옵니다, 전하.”
왕의 얼굴에 기대가 떠올랐습니다.
“왕자냐?”
잠시 침묵이 흘렀습니다.
“……공주이옵니다.”
왕의 얼굴이 굳었습니다.
일곱 번째 아이마저 딸이었습니다.
“또 공주라고?”
기다렸던 탄생은 기쁨이 되지 못했습니다.
결국 왕은 갓 태어난 아이를 버리도록 명했습니다.
왕의 딸로 태어났지만 왕궁에서 살아볼 기회조차 얻지 못한 아이.
그렇게 부모에게 버려진 일곱 번째 공주가 훗날 바리공주, 혹은 바리데기라 불리게 됩니다.
바리는 왕궁 밖으로 내쳐졌지만 죽지 않았습니다.
누군가의 손에 거두어져 부모와 떨어진 곳에서 자라났고, 세월이 흐르면서 왕궁에서도 오래전에 버린 일곱 번째 딸의 존재는 점차 잊혀갔습니다.

왕궁에 찾아온 죽음
왕과 왕비의 병은 날이 갈수록 깊어졌습니다.
귀한 약재를 써보고 이름난 의원을 불러보아도 소용이 없었습니다.
두 사람의 몸은 점점 쇠약해졌고 왕궁에는 죽음이 가까워지고 있다는 불안이 퍼졌습니다.
그러던 중 두 사람을 살릴 방법이 있다는 이야기가 전해졌습니다.
“전하, 두 분을 살릴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옵니다.”
병상에 누워 있던 왕이 힘겹게 몸을 일으켰습니다.
“방법이 있다면 무엇이든 말하라.”
“아주 먼 곳에 죽어가는 사람을 살릴 수 있는 약수가 있다고 합니다.”
왕의 얼굴이 밝아졌습니다.
“그렇다면 사람을 보내 구해오면 될 것 아니냐?”
그러나 대답은 간단하지 않았습니다.
그 약수가 있는 곳은 평범한 사람이 쉽게 갈 수 있는 곳이 아니었습니다.
길고 험한 길을 지나 인간이 살아가는 세상 너머까지 가야 했습니다.
그 길을 떠난다고 해도 다시 돌아올 수 있을지 알 수 없었습니다.
왕은 딸들을 불렀습니다.
“누가 우리를 위해 약수를 구해오겠느냐?”
그러나 아무도 선뜻 나서지 못했습니다.
부모를 살리고 싶은 마음이 없어서가 아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목숨을 걸어야 하는 길 앞에서 누구도 쉽게 대답하지 못했습니다.
그때 왕궁의 누군가가 오래전에 잊힌 한 사람을 떠올렸습니다.
왕에게는 딸이 하나 더 있었습니다.
태어나자마자 버렸던 일곱 번째 공주.
바리였습니다.

서울굿 계열의 바리공주 전승에서도 부모의 병이 깊어진 뒤 손위 공주들이 구약에 나서지 않고, 버려졌던 바리공주만이 부모를 위해 길을 떠나는 내용이 나타납니다.
다시 왕궁으로 돌아온 바리
사람들은 오래전에 버려졌던 공주를 찾아 나섰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바리는 자신이 태어났던 왕궁으로 돌아오게 됩니다.
화려한 궁궐도, 자신을 바라보는 수많은 사람도 그녀에게는 낯선 풍경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곳은 원래 바리가 살아야 했던 곳이기도 했습니다.
병상에 누운 왕과 왕비는 자신들 앞에 선 바리를 바라보았습니다.
“네가…… 바리냐?”
바리는 말없이 두 사람을 바라보았습니다.
자신을 낳아준 부모였습니다.
동시에 태어나자마자 자신을 버린 사람들이었습니다.
왕은 어렵게 말을 이어갔습니다.
“우리를 살릴 약이 있다고 한다.”
바리는 잠자코 들었습니다.
“그러나 그곳까지 갈 사람이 없다.”
무슨 뜻인지 모를 수 없었습니다.
자신을 버린 사람들이 이제 와서 자신에게 목숨을 구해달라고 하고 있었습니다.
화를 내며 돌아서도 이상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왜 이제 와서 나를 찾느냐고 물어도 누구도 할 말이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바리는 한참 동안 부모를 바라보다 입을 열었습니다.
“제가 가겠습니다.”
왕과 왕비가 놀란 눈으로 바리를 바라보았습니다.
“정말 가겠느냐?”
“살릴 방법이 있다면 다녀오겠습니다.”
그렇게 바리는 자신을 버린 부모를 살리기 위해 아무도 가려 하지 않았던 길을 떠납니다.

인간 세상 너머로
바리의 여행은 평범한 여행이 아니었습니다.
산을 넘고 강을 건너고 사람이 살아가는 마을과 들판에서 점점 멀어졌습니다.
익숙한 풍경은 하나둘 사라지고, 어느 순간부터 바리는 인간의 세계와 다른 곳으로 이어지는 길을 걷고 있었습니다.
그 길이 얼마나 길었는지, 얼마나 많은 날과 밤을 지났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바리는 멈추지 않았습니다.
마침내 먼 세계에 도착한 바리는 그곳을 지키는 무장승과 마주합니다.
“무엇을 찾아 여기까지 왔느냐?”
“죽어가는 부모를 살릴 약수를 구하러 왔습니다.”
“그것을 아무에게나 내어줄 수는 없다.”
“그렇다면 제가 무엇을 해야 합니까?”
바리에게 주어진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물을 긷고, 나무를 하고, 밭을 일구는 등 긴 노동과 시련이 이어졌습니다.
바리는 묵묵히 그것을 견뎠습니다.
하루가 지나고 또 하루가 지나고, 짧은 여행이었던 줄 알았던 길은 어느새 긴 세월이 되었습니다.
그곳에서 새로운 삶을 살아야 했고, 아이들을 낳고 기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바리는 자신이 왜 이 먼 곳까지 왔는지를 잊지 않았습니다.
마침내 오랜 시간이 흐른 뒤 바리는 그토록 찾아 헤맸던 것을 얻습니다.

죽음을 넘어 돌아오다
오랜 세월 끝에 바리는 마침내 약수와 꽃을 얻었습니다.
이제 부모를 살릴 수 있다는 생각에 서둘러 인간 세상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러나 고향에 가까워질수록 이상한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멀리서 곡소리가 들렸습니다.
흰옷을 입은 사람들이 긴 행렬을 이루어 걸어오고 있었습니다.
그 한가운데에는 상여가 있었습니다.
바리는 지나가던 사람을 붙잡았습니다.
“누구의 상여입니까?”
“오구대왕과 왕비마마의 상여입니다.”
순간 바리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습니다.
그렇게 먼 길을 걸었는데, 결국 늦고 만 것이었습니다.
바리는 가져온 약류수를 꺼냈습니다.
“길을 비켜주십시오.”
“공주님…….”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그 먼 길을 걸어온 이유가 바로 지금을 위해서였습니다.
바리는 부모에게 약을 사용했습니다.
잠시 아무 변화도 일어나지 않는 듯했습니다.
그러나 조금씩 죽음의 기운이 내려앉았던 몸에 생기가 돌아오기 시작했습니다.
숨이 이어지고 굳었던 몸이 다시 움직였습니다.
왕과 왕비가 눈을 떴습니다.
태어나자마자 버렸던 딸이 먼 세계에서 생명을 가지고 돌아와 부모를 죽음에서 되돌려 놓은 것입니다.

바리공주의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평범한 옛이야기였다면 여기에서 끝났을지도 모릅니다.
왕은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바리를 다시 공주로 받아들이고 모두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다는 결말이면 충분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바리공주의 이야기는 조금 다릅니다.
바리는 이미 이전의 바리가 아니었습니다.
살아 있는 사람이 쉽게 갈 수 없는 곳까지 다녀왔습니다.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었고, 그곳에서 생명을 되돌리는 힘을 얻어 다시 돌아왔습니다.
그런 바리에게는 또 다른 길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바리는 죽은 이들이 가야 할 길을 인도하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살아 있는 사람들은 그 길을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바리는 달랐습니다.
이미 한 번 삶의 세계를 벗어나 그 경계를 지나본 존재였기 때문입니다.
태어나자마자 부모에게 버려진 공주.
어디에도 속하지 못했던 아이.
그 아이가 긴 여행 끝에 죽은 사람들이 마지막으로 의지할 수 있는 길잡이가 되었습니다.
버려졌던 공주는 그렇게, 떠나는 이들을 버리지 않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훗날 사람이 죽을 때마다, 무당은 다시 바리의 여행을 노래했습니다.”

서울의 진오기굿은 죽은 사람의 영혼을 저승으로 천도하기 위한 의례이며, 그 안에서 바리공주 서사가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실제 천도굿에서는 망자가 바리공주의 뒤를 따라 저승으로 들어가는 과정이 의례적으로 표현됩니다.
이야기 뒤의 바리공주
앞에서 읽은 이야기는 서울 지역의 바리공주 전승을 중심으로 여러 전승의 내용을 참고해 재구성한 것입니다.
바리공주는 한 사람이 창작하여 완성한 하나의 작품이 아닙니다.
오랜 시간 굿에서 불리며 전승된 서사무가이기 때문에 지역과 구연자에 따라 여러 형태가 존재합니다.
이름 역시 바리공주뿐 아니라 바리데기·비리데기 등으로 전해집니다.
따라서 바리를 누가 길렀는지, 부모의 병과 죽음이 어떻게 묘사되는지, 저승 여행 과정과 무장승과의 관계 등이 판본에 따라 달라질 수 있습니다. 서울 지역 안에서도 구전 내용과 표현에 차이가 있다는 연구가 있습니다.
왜 바리공주 이야기는 굿에서 불렸을까?
바리공주 신화는 특히 망자를 저승으로 보내는 천도 의례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진오기굿에서 바리공주의 서사가 불리고, 바리공주가 망자의 길을 인도하는 존재로 기능하는 것은 이야기와 실제 의례가 서로 결합되어 있음을 보여줍니다.
그래서 바리공주는 단순히 부모에게 효도한 딸의 이야기만으로 설명하기 어렵습니다.
물론 효는 서울굿 계열의 바리공주 전승에서 중요한 주제로 나타납니다.
하지만 동시에 이 이야기에는 버림받은 존재의 귀환,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는 여행, 시련을 거친 뒤 새로운 존재로 변화하는 과정이 담겨 있습니다.
그리고 전라도 지역 전승처럼 바리가 자신을 버린 부모에게 적극적으로 감정을 드러내는 다른 유형도 존재합니다.
즉, 모든 바리공주를 단순히 순종적인 효녀의 이미지 하나로 설명할 수는 없습니다.
그것이 지역마다 다른 바리공주 이야기를 살펴보는 또 하나의 재미이기도 합니다.
다음 이야기 — 오르페우스와 에우리디케
그런데 한국에서 아주 멀리 떨어진 고대 그리스에도 살아 있는 사람이 죽은 이를 찾아 죽음의 세계로 향하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사랑하는 아내 에우리디케를 잃고 저승으로 내려간 음악가.
오르페우스.
바리공주는 부모의 생명을 되찾기 위해 길을 떠났습니다.
오르페우스는 사랑하는 아내를 되찾기 위해 길을 떠났습니다.
둘은 모두 살아 있는 몸으로 죽음의 세계를 향했습니다.
그러나 두 사람이 여행의 끝에서 마주한 결과는 크게 달랐습니다.
다음 이야기에서는 오르페우스와 에우리디케의 신화를 살펴보겠습니다.
참고 자료
- 국립민속박물관 《한국민속대백과사전》 「바리공주」
- 국립민속박물관 《한국민속대백과사전》 「천도굿」
- 국립민속박물관 《한국민속대백과사전》 「새남굿」
- 이분임, 「서울굿 바리공주 무가 고찰」, 2020
- 강진옥, 「서사무가 <바리공주>의 변이양상과 여성적 경험의 재현」, 2004
'한국의 신화와 전설'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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