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가〉(Changsega / 創世歌)는 한국 신화(Korean mythology / 韓国神話) 가운데 함경도 무속에서 전승된 대표적인 창세 서사무가입니다. 이 이야기에서는 세상을 먼저 만든 미륵(Mireuk / 弥勒) 앞에 석가(Seokga / 釈迦)가 뒤늦게 나타나 인간 세상의 주도권을 요구하고, 두 신이 세 차례 내기를 벌입니다.

안녕하세요, 이야기를 모으는 여우 호월입니다.
세상을 만든 신이 반드시 그 세상을 다스리는 신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다면 세상을 먼저 만든 미륵은 왜 석가에게 인간 세상을 빼앗겼을까요?
※ 〈창세가〉는 하나의 고정된 정본이 아니라 지역과 전승자에 따라 여러 형태로 전해진 서사무가입니다. 이번 이야기 본편은 1923년 함경남도 함흥군 운전면 본궁리에서 김쌍돌이(자료에 따라 금쌍돌이로 표기)가 구연하고 손진태가 채록한 〈창세가〉를 중심 골격으로 삼았습니다. 전명수본 〈창세가〉, 강춘옥본 〈셍굿〉, 제주 〈천지왕본풀이〉의 사건은 본편에 섞지 않고 뒤의 해설에서 따로 소개합니다. 일부 대화와 장면 연결은 이해와 몰입을 돕기 위한 재구성입니다.
하늘과 땅이 붙어 있던 때
아직 하늘과 땅이 지금처럼 떨어져 있지 않던 때였습니다.
미륵은 세상의 네 귀에 구리 기둥을 세워 하늘과 땅을 갈라놓았습니다.
붙어 있던 세계가 벌어지고 그 사이에 사람이 살아갈 공간이 생겼습니다.
하지만 공간만 생겼다고 세상이 완성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해와 달도 지금과 달랐습니다.
전승에서는 해와 달이 둘씩 있던 상태를 미륵이 정리하고,
남은 천체를 별과 연결해 현재에 가까운 하늘의 질서를 마련했다고 전합니다.
미륵은 산의 칡을 캐어 실을 만들고 베를 짜 거대한 장삼과 머리쓰개를 마련했습니다.
또 물과 불의 근본을 찾는 과정에서는 생쥐가 차돌과 시우쇠를 부딪쳐 불을 얻는 법과
산의 샘에 관한 정보를 알려주고 인간의 곡식을 먹을 몫을 얻었다고 전합니다.
세상은 하나씩 인간이 살 수 있는 곳으로 바뀌어 갔습니다.

금쟁반과 은쟁반에서 시작된 사람들
이제 사람을 마련할 차례였습니다.
미륵은 금쟁반과 은쟁반을 들고 축원했습니다.
그러자 금벌레와 은벌레가 각각 다섯씩 내려왔고,
이들은 남자와 여자가 되어 짝을 이루었습니다.
사람이 번성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장면은 현대적인 생물학 설명이 아니라,
인간이 어떻게 세상에 나타났는지를 이야기하는 신화적 인류 기원입니다.
이렇게 미륵은 하늘과 땅을 가르고, 해와 달을 정리하고, 인간까지 세상에 들였습니다.
그러므로 이 이야기의 출발점에서 인간 세상은 분명 미륵의 시대였습니다.
그런데 왜 하필 벌레였을까요?
〈창세가〉는 그 이유를 직접 설명하지 않습니다. 다만 완성된 인간이 곧바로 만들어지는 대신, 하늘에서 내려온 작은 생명이 자라 인간이 된다는 점에서 금벌레와 은벌레는 인간 이전의 원초적 생명 상태를 보여주는 존재로 해석되기도 합니다.

미륵의 세월이 끝났다고 말한 석가
그런데 창세가 끝난 뒤 석가가 나타났습니다.
석가는 태초부터 미륵과 함께 세상을 만든 존재로 등장하지 않습니다.
김쌍돌이본에서는 미륵의 창세가 먼저 이루어지고, 그 뒤에 석가가 나타나는 시간차가 중요합니다.
석가는 이제 미륵의 세월이 끝났으니 자신의 세월을 열겠다는 뜻을 내보입니다.
미륵에게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요구였습니다.
“이 세상을 차지하고 싶다면, 먼저 겨뤄 보아야 하지 않겠느냐.”
이 대사는 장면을 이해하기 쉽게 재구성한 것이지만,
두 신이 인간 세상의 주도권을 두고 내기를 벌인다는 흐름은 중심 판본의 핵심입니다.
그렇게 인세(人世) 차지 경쟁이 시작됩니다.
김쌍돌이본은 석가의 출생과 성장 과정을 자세히 설명하지 않지만,
강춘옥본 〈셍굿〉 같은 다른 판본에서는 석가의 출생과 서천궁 수행이 더 구체적으로 전해집니다.다만 이번 글에서는 판본이 섞이지 않도록 김쌍돌이본의 흐름만 따라가겠습니다.

첫 번째 내기 — 금병과 은병의 줄
미륵은 금병에 금줄을 달고,
석가는 은병에 은줄을 달았습니다.
그리고 두 병을 동해에 던졌습니다.
조건은 단순했습니다.
누구의 줄이 끊어지는가.
미륵은 자신의 줄이 끊어진다면 석가의 세월이 되고,
석가의 줄이 끊어진다면 아직 석가의 세월이 아니라고 조건을 정합니다.
결과는 분명했습니다.
석가의 줄이 끊어졌습니다.
첫 번째 승자는 미륵이었습니다.
하지만 경쟁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왜 하필 금병과 은병이었을까요?
〈창세가〉는 그 의미를 직접 설명하지 않습니다. 일부 연구에서는 병을 생명과 생성의 그릇으로,
금과 은의 짝을 서로 다른 두 힘의 대립으로 읽기도 합니다.
다만 이런 해석은 원전의 직접 설명이 아니라 후대의 상징 해석입니다.

두 번째 내기 — 한여름 성천강 붙이기
두 번째 시험은 더 기묘했습니다.
한여름의 성천강을 ‘붙이는’ 것이었습니다.
김쌍돌이본을 인용한 연구에서는 이 장면에 ‘동지채’와 ‘입춘채’가 등장하고,
미륵 쪽에서 강이 맞붙어 성공하는 것으로 정리됩니다.
현대 독자에게는 강물을 얼어붙게 하는 시험처럼 이해될 수도 있지만,
원문 표현을 살리면 ‘성천강을 붙이는 내기’라고 하는 편이 맞습니다.
이번에도 미륵이 앞섰습니다.
첫 승부도, 두 번째 승부도 미륵의 것이었습니다.
두 번이나 패한 석가에게 이제 남은 것은 마지막 내기뿐이었습니다.
성천강은 함흥 일대를 지나 동해로 흐르는 실제 강입니다.
함흥에서 전승된 〈창세가〉는 이 익숙한 지역의 강을 두 신의 두 번째 승부 무대로 삼습니다.

마지막 내기 — 참잠과 반잠
마지막 승부는 힘으로 무엇을 끊거나 강을 움직이는 시험이 아니었습니다.
두 신은 한 방에 누워 잠을 자기로 했습니다.
잠든 동안 누구의 무릎에서 꽃이 피는지로 인간 세상의 주인을 정하기로 한 것입니다.
미륵은 참잠에 들었습니다.
깊이 잠든 것입니다.
석가는 반잠을 잤습니다.
완전히 잠들지 않은 채 미륵 쪽을 살폈습니다.
시간이 흐르자 꽃이 피었습니다.
그런데 꽃이 핀 곳은 석가의 무릎이 아니었습니다.
미륵의 무릎이었습니다.
앞선 두 내기에 이어 마지막 시험에서도 창조의 결과는 미륵 쪽에 나타난 셈입니다.

꽃을 가져간 석가
반잠 상태였던 석가는 그 장면을 보았습니다.
미륵은 여전히 깊이 잠들어 있었습니다.
석가는 미륵의 무릎에 핀 꽃을 가져와 자신의 무릎에 꽂았습니다.
그리고 마치 자신의 무릎에서 꽃이 핀 것처럼 승리를 주장합니다.
중요한 것은 꽃의 종류보다 승부가 뒤집힌 방식입니다.
석가가 더 아름다운 꽃을 피운 것도 아니고, 마지막에 더 강한 창조 능력을 보인 것도 아닙니다.
꽃은 미륵에게서 피었지만,
결과는 석가의 것이 되었습니다.
현대 연구에서는 이 꽃을 흔히 모란꽃으로 설명합니다. 모란은 전통적으로 ‘꽃 중의 왕’이라 불리며 부귀와 번영을 상징해 온 꽃입니다. 다만 〈창세가〉의 꽃이 왜 모란이어야 했는지, 그리고 그 상징이 이 승부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지는 원전이 직접 설명하지 않습니다.

미륵은 왜 다시 싸우지 않았을까?
꽃이 미륵의 무릎에서 피었지만 이야기는 새로운 승부로 되돌아가지 않습니다.
미륵은 인간 세상을 내주고 물러납니다.
김쌍돌이본은 이때 미륵이 석가의 시대가 순탄한 세월이 되지 않을 것임을 예고하는 방향으로 이어집니다.
원전에는 당시 사회의 여러 신분·직업·집단이 말세의 표지처럼 열거되기도 합니다.
이야기의 핵심은 다른 곳에 있습니다.
세상을 만든 미륵의 시대가 끝나고, 속임수로 인간 세상을 차지한 석가의 시대가 시작되었다는 것.
그리고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의 불완전함이 그 권력 교체와 연결된다는 것입니다.
석가의 시대
미륵은 세상을 만들고,
석가는 그 세상을 차지했습니다.
앞선 두 번의 승부도, 마지막에 꽃을 피우는 능력도 미륵이 우세했습니다.
그런데 인간 세상의 통치권은 창조한 존재가 아니라 결과를 뒤집은 존재에게 넘어갔습니다.
〈창세가〉는 미륵의 태평한 질서가 어떻게 지금의 복잡하고 불완전한 현실로 바뀌었는지를,
두 신의 경쟁과 하나의 꽃으로 설명합니다.
세상을 만드는 능력과 세상을 차지하는 힘은 언제나 같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창세가〉의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미륵이 물러났다고 해서 〈창세가〉의 이야기가 바로 끝나는 것은 아닙니다.
김쌍돌이본에는 그 뒤에도 석가의 시대와 관련된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해와 달의 질서를 다시 다루는 대목이 나타나고, 사냥과 불을 이용한 생활,
인간 세계의 새로운 질서와 연결되는 부분들도 남아 있습니다.
다만 이 후반부는 전승 과정에서 일부가 빠지거나 크게 축약된 흔적이 있습니다.
그래서 이번 글에서는 미륵과 석가의 인세차지경쟁까지를 중심으로 살펴봤습니다.
석가가 인간 세상을 차지한 뒤 그 세상이 어떻게 지금과 같은 인간의 세계로 바뀌어 가는지,
〈창세가〉의 또 다른 흥미로운 이야기로 따로 살펴볼 만합니다.
이야기 뒤의 〈창세가〉
하나의 고정된 이야기가 있을까?
〈창세가〉는 한 작가가 한 번에 완성한 문학 작품이 아닙니다.
함경도 무속에서 구전되던 서사무가가 여러 무녀와 채록자를 거치며 서로 다른 형태로 기록되었습니다.
이번 본편의 중심이 된 김쌍돌이본은 1923년 함흥에서 손진태가 채록했고,
1930년 손진태 편 《朝鮮神歌遺篇》에 수록되었습니다.
현재 한국 창세무가 연구에서 널리 활용되는 이른 시기의 핵심 채록 자료 가운데 하나이지만,
이를 한국 창세신화의 ‘최초 기록’이나 신화의 발생 시점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김쌍돌이본 〈창세가〉
자료 성격: 함경도 서사무가의 한 채록 각편.
핵심 내용: 미륵의 선행 창세, 인간 창조, 석가의 후발 등장, 세 차례 인세차지경쟁, 꽃 절취, 미륵의 퇴장.
이번 본편 사용: 이야기의 중심 골격 전체.
중요한 특징: 금병·은병 줄 내기와 성천강 붙이기 뒤에 마지막 잠·꽃 내기가 이어지며, 앞선 두 승부는 미륵이 이깁니다.
전명수본 〈창세가〉
전명수본도 미륵과 석가의 경쟁을 전하지만 앞선 내기의 구성이 다릅니다.
대표적으로 공중에 매단 술병을 산호채로 쳐 술만 허공에 남기는 형태의 내기가 보고됩니다.
또 미륵이 물러나며 나무·돌·짐승 등이 말하지 못하게 된다는 대목도 전합니다.
이 장면들은 흥미롭지만 김쌍돌이본 본편에 끼워 넣지 않았습니다.
강춘옥본 〈셍굿〉
강춘옥 구연 〈셍굿〉은 1965년 채록되어 1966년 《관북지방무가》에 수록된 자료입니다.
석가의 출생과 서천궁 수행이 더 구체적으로 전해지고,
석가를 ‘계고 많고 메꾀 많고 수단이 좋은’ 존재로 표현한 사설이 연구에서 인용됩니다.
일부 연구는 이것을 복잡한 새 시대를 운영하는 ‘계교·꾀·수단’의 가치와 연결합니다.
하지만 이것은 강춘옥본과 그에 대한 연구자의 해석입니다.
김쌍돌이본에서 석가가 왜 꽃을 훔쳤는지에 대한 직접적인 심리 설명으로 가져오면 판본이 섞입니다.
제주 〈천지왕본풀이〉와는 무엇이 다를까?
제주 〈천지왕본풀이〉에도 꽃 피우기와 속임수로 세계의 통치권이 갈리는 이야기가 전합니다.
그러나 중심 인물은 대별왕과 소별왕이며, 형제 관계와 이승·저승의 세계 분담 구조를 가집니다.
대별왕을 미륵, 소별왕을 석가의 다른 이름이라고 단정할 근거는 없습니다.
비슷한 구조를 가진 독립적인 전승군으로 비교하는 것이 안전합니다.
| 전승/판본 | 주요 특징 |
| 김쌍돌이본 〈창세가〉 | 미륵의 선행 창세, 세 차례 내기, 금병·은병 줄, 성천강 붙이기, 참잠·반잠, 꽃 절취 |
| 전명수본 〈창세가〉 | 다른 형태의 앞선 내기, 공중 술병·산호채, 미륵 퇴장 때 만물의 언어 제거 대목 |
| 강춘옥본 〈셍굿〉 | 석가의 출생·수행이 상세하며, 새 시대의 가치에 대한 설명이 확대됨 |
| 제주 〈천지왕본풀이〉 계열 | 대별왕·소별왕의 경쟁과 세계 분담. 꽃 피우기·속임수 구조는 비교 가능하지만 독립된 전승군 |
세상을 먼저 만든 미륵은 왜 석가에게 인간 세상을 빼앗겼을까?
김쌍돌이본의 서사만 놓고 보면 답은 의외로 단순합니다.
미륵이 창조 능력에서 석가에게 밀려서가 아닙니다.
첫 번째 금병·은병 줄 내기도 미륵이 이겼고, 두 번째 성천강 붙이기도 미륵이 이겼습니다.
마지막 승부에서도 꽃은 미륵의 무릎에서 피었습니다.
결과를 뒤집은 것은 석가의 반잠과 꽃 절취였습니다.
그러므로 김쌍돌이본에서 미륵이 인간 세상을 잃는 직접적인 이유는 ‘능력 부족’이 아니라,
마지막 승부의 결과가 속임수로 바뀌었기 때문이라고 정리할 수 있습니다.
다만 원전은 “왜 미륵이 속임수를 알면서도 다시 싸우지 않았는가”,
“왜 석가가 정당한 승부보다 꽃 절취를 선택했는가”를 현대 소설처럼 심리적으로 길게 설명하지 않습니다.
미륵이 관대해서 일부러 양보했다거나,
석가가 문명을 만들기 위해 악역을 자처했다고 단정하면 원전보다 멀리 나간 해석이 됩니다.
오히려 이 이야기에서 더 중요한 질문은 ‘왜 창조자와 통치자가 다른가’입니다.
〈창세가〉는 세계를 만든 자가 세계의 실제 권력을 끝까지 보유하지 못하는 구조를 보여줍니다.
그리고 그 어긋남을 현재 세계가 완전하지 않은 이유와 연결합니다.
꽃 피우기와 속임수는 무엇을 의미할까?
① 원전에서 확인 가능한 사실
김쌍돌이본에서는 마지막 승부의 기준이 잠든 동안 무릎에 꽃이 피는가입니다.
미륵은 참잠을 자고, 석가는 반잠을 잡니다.
꽃은 미륵의 무릎에서 피며 석가가 그 꽃을 가져가 자기 무릎에 꽂습니다.
이 행동 뒤 인간 세상의 주도권이 석가에게 넘어가고, 미륵은 물러납니다.
여기까지는 이야기 전개에서 비교적 직접 확인되는 내용입니다.
② 이야기 구조에서 읽을 수 있는 의미
꽃은 살아 있는 것이 자라고 피어나는 장면입니다.
그래서 마지막 시험은 단순한 힘겨루기보다 누가 생명과 창조의 결과를 드러내는가를 시험하는 장면처럼 읽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꽃을 피운 존재와 승자로 인정된 존재가 다릅니다.
이 구조는 ‘정당한 능력’과 ‘현실의 권력’이 일치하지 않는 세계를 보여주는 효과를 만듭니다.
또한 석가의 시대가 불완전한 현세와 연결된다는 점까지 생각하면,
속임수로 시작된 통치가 왜 완전한 세상으로 이어지지 않았는지를 설명하는 기원담처럼 읽을 수도 있습니다.
이것은 원전이 교리처럼 직접 설명한 문장이 아니라 이야기 구조에서 읽을 수 있는 의미입니다.
③ 현대 연구나 해석에서 제시되는 관점
여러 연구에서는 꽃 피우기를 생명·생장·농경·창조의 상징과 연결해 읽습니다.
신연우의 연구는 ‘속이기’ 모티프를 트릭스터의 새 질서 형성과 관련해 살핍니다.
심재숙은 미륵의 거인성, 무릎의 꽃, 창조 기능을 대지·창조여신성과 연결하는 해석을 제시합니다.
다만 ‘미륵은 원래 여성신이었다’는 식으로 확정하면 안 됩니다.
또 강춘옥본의 ‘계교·꾀·수단’은 복잡한 석가 시대의 새로운 가치로 해석되기도 하지만,
이것을 김쌍돌이본 석가가 꽃을 훔친 직접 동기라고 소급해서는 안 됩니다.
왜 불교의 미륵과 석가가 창세신화에 등장할까?
〈창세가〉는 미륵과 석가라는 불교계 이름을 사용합니다.
그러나 이 이야기는 불교 경전에 나오는 미륵보살과 역사적 석가모니의 관계를 그대로 재현한 것이 아닙니다.
한국 무속의 창세 서사가 오랜 전승 과정에서 불교·중국계 우주론 등의 이름과 관념을 받아들이고,
다시 무속적 세계관 속에서 재구성한 것으로 보는 편이 맞습니다.
다른 신화와 비교해 보면
| 신화 | 핵심 사건 | 결과 |
| 함경도 〈창세가〉 | 미륵과 석가가 인간 세상을 두고 경쟁하고, 석가가 미륵의 무릎에 핀 꽃을 가져감 | 석가가 현세의 주도권을 차지함 |
| 제주 〈천지왕본풀이〉 | 대별왕과 소별왕이 꽃 피우기 경쟁을 벌이고 속임수가 개입함 | 이승과 저승의 통치가 갈림 |
꽃 피우기로 세계의 주도권을 겨루는 구조는 몽골과 류큐·미야코의 일부 전승에서도 보고됩니다.
다만 신격, 규칙, 결과가 서로 달라 이 유사성만으로 직접 전파를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한국·몽골·류큐의 꽃 피우기 경쟁은 별도 비교신화 글에서 자세히 다루겠습니다.
다음 이야기 — 한국 신화 5. 단군신화
〈창세가〉가 “누가 인간 세상을 만들고 차지했는가”를 묻는 이야기라면,
다음에는 인간 세계에 새로운 질서와 나라가 어떻게 시작되었는지를 보여주는 가장 유명한 한국 신화로 넘어가 보겠습니다.
하늘에서 내려온 환웅, 인간이 되기를 바란 곰, 그리고 단군의 탄생.
다음 편에서는 「한국 신화 5. 단군신화 | 곰은 어떻게 인간이 되었을까?」를 살펴보겠습니다.
참고 자료
1차 자료
- 孫晉泰 編, 《朝鮮神歌遺篇》, 東京: 鄕土研究社, 1930, 〈創世歌〉 수록.
- 김쌍돌이 구연 〈창세가〉, 1923년 함경남도 함흥군 운전면 본궁리 채록.
- 임석재·장주근 채록, 강춘옥 구연 〈셍굿〉, 《관북지방무가》, 1966.
- 전명수본 〈창세가〉 및 제주 〈천지왕본풀이〉 계열은 비교 자료로 구분.
2차 자료
- 한국학중앙연구원, 「창세가」,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한국학중앙연구원, 「조선신가유편」,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한국학중앙연구원, 「셍굿무가」,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국립민속박물관, Encyclopedia of Korean Folk Literature, ‘Song of the Creation of the Universe’ 관련 항목.
- 김헌선, 《한국의 창세신화》, 길벗, 1994.
- 박종성, 《한국 창세서사시 연구》, 태학사, 1999.
- 신연우, 「한국 창세신화의 ‘속이기’ 모티프를 통한 트릭스터의 이해」, 《고전문학연구》 44, 2013.
- 심재숙, 「〈창세가〉에 나타난 미륵의 창조여신적 성격과 ‘미륵-석가’ 대결의 의미」, 《돈암어문학》 33, 2018.
- 이평래, 「몽골 창세신화의 ‘꽃피우기 경쟁’ 이야기에 대한 종합적 고찰」, 《민속학연구》 30, 2012.
- 오세정, 「〈창세가〉의 원형적 상상력의 구조와 의미체계」, 《구비문학연구》 20, 2005.
- 오세정, 「한국 창세신화 〈창세가〉에 나타난 신, 자연, 인간의 관계」, 《인간연구》 33, 2017.
- 신연우, 「함흥 〈창세가〉에 보이는 성속의 넘나듦」, 《한국무속학》 44, 2022.
- 윤준섭, 「무불(巫佛)의 관계를 통해 본 함경도 무속신화 〈셍굿〉 연구」, 《구비문학연구》 76,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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