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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신화와 전설

한국 신화 7. 부여 건국신화 | 동명은 어떻게 강을 건너 부여를 세웠을까?

by 신화기담 호월 2026. 10. 28.

 

부여의 건국신화에는 두 번이나 버림받고도 살아남아 왕이 된 아이가 등장합니다.

바로 부여의 시조 동명(東明)입니다.

그의 이야기를 살펴보면 어딘가 익숙한 장면들이 눈에 들어옵니다.

 

비범한 탄생, 왕의 위협, 뛰어난 활솜씨, 그리고 물고기와 자라의 도움으로 강을 건너는 기적까지.

고구려의 시조 주몽신화와 무척 닮아 있습니다.

그런데 더욱 흥미로운 사실이 있는데, 고구려의 주몽 역시 동명성왕(東明聖王)이라고 불린다는 점입니다.

 

안녕하세요, 이야기를 모으는 여우 호월입니다.

후한 시대 왕충의 《논형》에는 부여의 시조 동명에 관한 이야기가 남아 있습니다.

왕에게 버림받은 아이가 살아남아 성장하고, 자신을 죽이려는 왕을 피해 강을 건너 새로운 나라의 왕이 되는 이야기입니다.

오늘은 그 기록을 따라 부여 동명의 삶을 살펴보겠습니다.

그리고 이야기가 끝난 뒤, 그가 우리가 아는 주몽과 어떤 관계에 있는지도 함께 알아보겠습니다.

 

※ 판본 안내: 이번 본편은 왕충의 《논형》 권2 〈길험편〉을 중심으로 재구성했습니다. 다른 문헌에 나타나는 차이는 이야기 뒤에서 따로 설명하며, 원전에 없는 사건이나 대화는 추가하지 않았습니다.

 


목차

  1. 탁리국 왕궁에 내려온 기이한 기운
  2. 돼지와 말이 살린 아이
  3. 활을 잘 쏘던 동명, 왕의 두려움을 사다
  4. 엄호수에서 일어난 기적
  5. 버려진 아이가 부여의 왕이 되다
  6. 이야기 뒤의 동명 — 다른 기록에도 남아 있을까?
  7. 《삼국유사》에는 또 다른 장면이 있다
  8. 부여의 동명과 고구려의 주몽
  9. 이전 이야기
  10. 다음 이야기
  11. 참고 자료

1.  탁리국 왕궁에 내려온 기이한 기운

 

먼 옛날, 북쪽의 탁리국(橐離國)에 한 왕이 있었습니다.

어느 날, 왕을 모시던 시비 한 사람이 아이를 가졌는데, 이 소식을 들은 왕은 시비를 죽이려 했습니다.

왕이 어째서 그토록 가혹한 결정을 내렸는지 《논형》에는 자세히 나와있지 않지만,

시비가 임신했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왕이 그녀를 죽이려 했다고 전합니다.

 

목숨이 위태로워진 시비는 자신이 어떻게 아이를 갖게 되었는지 설명했습니다.

그녀의 말에 따르면, 어느 날 하늘에서 달걀만 한 기운이 내려왔는데,

그 상서로운 기운으로 인해 자신이 임신하게 되었다는 것이었습니다.

 

얼마 뒤 그녀는 아들을 낳았는데, 왕은 갓 태어난 아이를 돼지우리에 버리게 했습니다.

 

잠깐, 탁리국은 어떤 나라였을까?
탁리국(橐離國)은 《논형》에 등장하는 북방의 나라로, 부여 시조 동명이 태어나고 성장한 곳입니다.
하지만 탁리국이 실제로 어디에 있었는지, 어떤 나라였는지는 아직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다른 기록에서는 이 나라를 고리국(高離國)이나 색리국(索離國)으로 부르기도 합니다.
이러한 이름들은 같은 나라를 다르게 표기한 것일 가능성이 있지만, 정확한 관계는 확정되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탁리국은 현재로서는 동명 건국신화에 등장하는 나라로 이해하는 것이 가장 정확합니다.


 

2.  돼지와 말이 살린 아이

아직 스스로 몸을 가눌 수도 없는 아기가 돼지들 사이에서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을까요?

 

이 때, 뜻밖의 일이 일어났습니다.

돼지가 아이에게 입김을 불어 주었고, 아이는 죽지 않았습니다.

 

왕은 아이를 다시 마구간으로 옮기게 했습니다.

이번에는 말에게 짓밟혀 죽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마구간의 말들 역시 아이에게 입김을 불어 주었고, 아이는 이번에도 살아남았습니다.

 

두 번이나 버려졌는데도 살아남은 아이.

왕은 그제야 이 아이가 정말로, 하늘의 아들, 곧 천자(天子)일지도 모른다고 여겼습니다.

 

그리고, 결국 왕은 아이를 더 이상 버리지 않고, 어머니에게 거두어 기르도록 했습니다.

그렇다고 아이가 왕궁에서 특별한 대접을 받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논형》은 아이가 종처럼 길러졌다고 전했으며, 죽을 위기에서는 벗어났지만,

그의 삶이 달라진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 아이의 이름이 바로 동명(東明)이었습니다.


3.  활을 잘 쏘던 동명, 왕의 두려움을 사다

 

동명은 어머니의 보살핌 아래 성장했습니다.

하지만 그가 맡은 일은 소와 말을 돌보는 것이었습니다.

 

세월이 흐르면서 동명에게 남다른 재능이 드러났는데, 그것은 바로 활쏘기였습니다.

《논형》에는 동명이 활을 매우 잘 쏘았다고 나와 있습니다.

그런데 그 뛰어난 재능은 오히려 동명을 위험에 빠뜨렸습니다.

왕은 동명의 활솜씨를 알게 되자 그를 두려워하기 시작했습니다.

언젠가 동명이 자신의 나라를 빼앗을지도 모른다고 여긴 것입니다.

 

결국 왕은 다시 동명을 죽이려 했습니다.

갓 태어났을 때에는 신비로운 출생 때문에 죽을 위기에 처했고,

성장한 뒤에는 뛰어난 활솜씨 때문에 목숨을 위협받게 된 것입니다.

 

동명은 더 이상 그곳에 머물 수 없었습니다.

왕의 위협을 피해 달아난 그는 남쪽으로 향했습니다.

그리고 그 도주 끝에, 자신의 운명을 바꾸게 될 강을 만나게 됩니다.


 

4. 엄호수에서 일어난 기적

 

왕의 위협을 피해 남쪽으로 달아나던 동명은 마침내 커다란 강 앞에 이르렀는데,

그 강의 이름은 엄호수(掩淲水)였습니다.

 

뒤에서는 왕이 보낸 병사들이 그를 추격하고 있어,

강을 건너지 못한다면 동명은 추격에서 벗어나기 어려웠습니다.

 

동명이 자신이 지니고 있던 활로 강물을 치자, 놀라운 광경이 펼쳐졌습니다.

강물 속에 있던 물고기와 자라들이 물 위로 떠오르며, 서로 이어져 동명이 건널 수 있는 다리를 만들었습니다.

 

조금 전까지 그의 앞길을 가로막고 있던 강 위에 길이 열린 것입니다.

동명은 물고기와 자라가 만든 다리를 밟고 강을 건넜습니다.

 

동명이 건너편에 이르자, 다리를 이루고 있던 물고기와 자라들이 다시 흩어졌고,

강 위에 나타났던 길도 순식간에 사라져, 뒤쫓아 온 병사들은 더 이상 강을 건널 수 없었습니다.

 

그렇게 동명은 자신을 죽이려던 왕의 손길에서 벗어날 수 있었고,

강을 건넌 그의 앞에는 새로운 운명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5.  버려진 아이가 부여의 왕이 되다

 

그리고 그가 도달한 곳이 바로 부여였습니다.

《논형》은 동명이 이곳에 도읍을 정하고 왕이 되었다고 전합니다.

 

그렇다면 동명은 부여에 도착한 뒤 어떻게 사람들을 모으고 왕위에 올랐을까요?

아쉽게도 《논형》에는 그 과정이 자세히 나와 있지 않습니다.

동명이 어떤 사람들을 만났는지, 어떻게 도읍을 정했는지, 왕이 된 뒤 어떤 정치를 펼쳤는지는 이 기록만으로 알 수 없습니다.

 

그렇기에 이 이야기는 실제 건국 과정의 상세한 기록이라기보다는,

부여의 첫 왕이 어떤 특별한 운명을 지닌 인물이었는지를 설명하는 건국신화로 읽을 필요가 있습니다.

 

《논형》의 저자인 왕충도 이 이야기에 주목했습니다.

그는 동명이 버림받고도 살아남은 일, 동물들의 도움으로 여러 차례 위기를 벗어난 일을 우연한 사건으로 보지 않았습니다.

장차 왕이 될 인물이었기에 하늘의 보호를 받았다는 징표로 해석한 것입니다.

 

이렇게 바라보면 동명이 강을 건너 부여의 왕이 되는 결말은 더욱 특별해집니다.

그의 운명은 왕이 두려워했던 방향으로 이루어졌습니다.

그러나 동명은 자신을 죽이려던 왕의 나라를 빼앗은 것이 아니라, 새로운 땅에서 왕이 되었습니다.

 

죽음의 위기를 넘어서 새로운 나라의 시작으로 이어진 삶.

그것이 《논형》에 전해지는 부여 시조 동명의 이야기입니다.


6.  이야기 뒤의 동명 — 다른 기록에도 남아 있을까?

지금까지 살펴본 동명의 이야기는 후한 시대 왕충이 쓴 《논형》 권2 〈길험편〉에 전해집니다.

그런데 부여의 시조 동명에 관한 기록은 이것만이 아닙니다.

《삼국지》에 인용된 《위략》, 《후한서》, 《수신기》에도 버려진 아이가 살아남아 성장하고,

강을 건너 부여의 왕이 되는 이야기가 남아 있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이 기록들이 거의 같은 사건을 전하면서도, 이야기의 배경과 일부 장면을 서로 다르게 적고 있다는 것입니다.

《위략》 — 고리국에서 태어난 동명

《위략》은 중국 삼국 시대의 위나라에 관한 역사 자료를 정리한 책입니다.

오늘날 《위략》 전체가 온전하게 남아 있는 것은 아닙니다.

다행히 《삼국지》 권30 부여전의 주석에 동명의 건국 이야기가 인용되어 있어 그 내용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위략》에 실린 이야기는 《논형》과 시작부터 이름이 조금 다릅니다.

《논형》에서 동명이 태어난 나라는 탁리국(橐離國)이지만, 《위략》에서는 고리국(高離國)이라고 부릅니다.

나라의 이름은 다르지만 동명의 탄생 과정은 비슷합니다.

왕의 시비가 하늘에서 내려온 달걀만 한 기운으로 임신했고, 태어난 아이는 돼지우리와 마구간에 버려집니다.

그러나 돼지와 말의 도움으로 살아남습니다.

이후 왕은 아이가 천자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해 어머니에게 기르도록 합니다.

 

여기서 한 가지 차이가 나타납니다.

《논형》은 동명이 소와 말을 돌보도록 했다고 기록하지만, 《위략》에는 주로 말을 돌보았다는 내용이 전합니다.

또 동명이 도망쳐 도착한 강의 이름도 다릅니다.

《논형》에서는 엄호수(掩淲水)라고 부르지만, 《위략》에는 시엄수(施掩水)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장면은 같습니다.

동명이 활로 물을 치자 물고기와 자라가 떠올라 다리를 만들고, 그가 강을 건넌 뒤에는 다시 흩어집니다.

뒤따르던 병사들이 강을 건너지 못하게 되는 결말도 그대로 전합니다.

이처럼 《위략》의 기록은 일부 이름과 세부 표현이 달라졌어도 동명 건국신화의 핵심 서사를 거의 온전히 간직하고 있습니다.

《후한서》 — 왕이 시비를 가두었다는 기록

《후한서》 권85 부여국조에도 동명의 이야기가 전합니다.

이 기록에서는 동명이 태어난 나라를 색리국(索離國)이라고 부릅니다.

《논형》이나 《위략》과 다른 이름입니다.

이야기의 시작에도 눈여겨볼 차이가 있습니다.

색리국의 왕이 외출해 있는 동안 왕의 시비가 임신합니다.

왕이 돌아와 그녀를 죽이려 하자, 시비는 하늘에서 달걀만 한 기운이 내려와 임신했다고 설명합니다.

그러자 왕은 시비를 가두었습니다.

 

이 감금 장면은 이번 본편의 중심 판본인 《논형》에는 나오지 않습니다.

그 뒤 시비가 아들을 낳자 왕은 아이를 돼지우리에 버리게 합니다.

돼지가 입김으로 아이를 살리고, 마구간에서도 말이 같은 방식으로 아이를 보호합니다.

왕은 아이가 신비로운 존재라고 생각해 어머니가 거두어 기르도록 허락합니다.

동명이 자라서 활을 잘 쏘게 되자 왕이 다시 그를 죽이려 한다는 전개는 다른 기록과 비슷합니다.

 

다만 《후한서》는 왕이 동명의 뛰어난 용맹함을 경계했다고 설명합니다.

동명이 도착한 강의 이름은 엄호수(掩㴲水)로 적혀 있습니다.

여기서는 물고기와 자라가 모여 물 위에 떠오르고, 동명이 그것을 밟고 강을 건넌다고 전합니다.

《논형》이나 《위략》처럼 추격병이 건너지 못했다는 장면까지 자세히 서술하지는 않습니다.

그렇지만 동명이 신비로운 도움을 받아 강을 건너 부여의 왕이 되었다는 이야기의 흐름은 같습니다.

《수신기》 — 기이한 이야기 속에 남은 부여의 시조

동명의 이야기는 역사서뿐 아니라 기이한 사건들을 모은 《수신기》에도 등장합니다.

《수신기》는 동진 시대의 간보가 편찬한 지괴소설집으로, 신비롭거나 설명하기 어려운 사건들을 기록한 문헌입니다.

권14에는 동명과 관련된 이야기가 실려 있습니다.

이 기록에서 동명의 출신국은 고리국의 다른 한자 표기 槀離國 으로 나타납니다.

왕의 시비가 하늘에서 내려온 기운으로 임신하고, 돼지와 말이 아기를 보호한다는 내용은 다른 문헌과 같습니다.

 

다만 동명이 성장하는 과정에서는 소와 말을 함께 돌보았다는 《논형》과 달리, 말을 돌보았다고 적습니다.

동명은 활을 잘 쏘는 인물이 되었고, 왕은 그가 나라를 빼앗을까 두려워해 죽이려 했습니다.

동명은 남쪽으로 달아나 강에 이릅니다.

《수신기》의 일부 전승본에는 이 강의 이름이 시엄빙(施掩冰)으로 나타납니다.

 

하지만 동명이 활로 강물을 치자 물고기와 자라가 다리를 만들고,

그가 강을 건넌 뒤 흩어져 추격병이 건너지 못했다는 결말은 《논형》·《위략》과 거의 같습니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동명의 건국신화가 역사 기록뿐 아니라 기이한 사건을 모은 문헌에도 수록되었다는 사실입니다.

다만 《수신기》에 수록되었다는 이유만으로 이 이야기가 역사서와 무관한 독립적인 구전이었다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출신국과 강 이름은 왜 다르게 기록되었을까?

지금까지 살펴본 기록을 정리하면 동명이 태어난 나라는 탁리국, 고리국, 색리국 등으로 나타납니다.

강 이름도 엄호수, 시엄수 등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렇다면 정말 서로 다른 나라와 강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일까요?

반드시 그렇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이 기록들은 서로 다른 시대에 편찬되었고, 비슷한 이야기를 옮기는 과정에서 지명의 한자 표기가 달라졌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그러나 각각의 이름이 정확히 어떤 지역을 가리켰는지, 모든 기록이 동일한 원전에서 비롯되었는지는 분명하게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또 엄호수가 오늘날 어느 강인지도 확정되지 않았습니다.

 

더 중요한 것은 지명의 표기가 달라져도 이야기의 중심이 유지된다는 점입니다.

여러 문헌은 이렇게 공통된 이야기 구조를 전하면서도 각기 다른 세부를 남겼습니다.

이 차이들을 살펴보면 부여의 동명신화가 고대 문헌 속에서 어떤 모습으로 전해졌는지를 조금 더 구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7.  《삼국유사》에는 또 다른 장면이 있다

 

《삼국유사》 권1 「고구려」조에는 《주림전》에서 인용했다는 동명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여기에는 아이가 장차 왕이 되리라는 점복이 등장합니다.

아이를 보호하는 장면에도 돼지의 입김뿐 아니라 말의 젖이 언급됩니다.

 

반면 이번 본편의 중심 자료인 《논형》에는 이런 점복 장면이 없습니다.

《삼국유사》는 해당 인용문 뒤에서 동명을 졸본부여와 연결하는 해석도 제시합니다.

다만 《삼국유사》가 인용한 《주림전》과 오늘날 전하는 《법원주림》 제21권의 정확한 관계에는 아직 확인되지 않은 부분이 있습니다.

 


 

8. 부여의 동명과 고구려의 주몽

부여 동명의 이야기를 읽다 보면 고구려의 시조 주몽이 떠오릅니다.

신비로운 탄생, 버려진 아이를 보호하는 동물들, 뛰어난 활솜씨, 왕의 위협을 피해 달아나는 영웅.

그리고 물고기와 자라가 만들어 준 다리까지, 두 건국신화는 놀라울 만큼 닮아 있습니다.

 

그런데 더욱 흥미로운 사실이 있습니다.

고구려를 세운 주몽 역시 동명성왕(東明聖王)이라는 이름으로 불린다는 점입니다.

닮은 이야기, 서로 다른 출발점

두 이야기는 신비로운 탄생에서부터 비슷한 구조를 보여 줍니다.

《논형》에 따르면 부여의 동명은 탁리국 왕의 시비가 하늘에서 내려온 달걀만 한 기운으로 임신하여 낳은 아이입니다.

반면 《삼국사기》에 전하는 주몽은 하백의 딸 유화가 햇빛으로 잉태한 뒤 낳은 알에서 태어납니다.

 

동명은 돼지와 말의 입김 덕분에 살아남았고, 주몽 역시 버려졌을 때 여러 동물의 보호를 받았습니다.

두 사람은 성장한 뒤 뛰어난 활솜씨를 드러내며, 결국 자신을 위협하는 세력을 피해 달아납니다.

강을 건너는 장면은 더욱 닮았습니다.

동명은 엄호수에서 활로 물을 쳐 물고기와 자라의 다리를 얻습니다.

주몽도 강 앞에서 자신의 신성한 혈통을 밝히며 도움을 청하고, 물고기와 자라가 만든 다리를 건넙니다.

 

그러나 마지막에 세우는 나라는 다릅니다.

《논형》의 동명은 부여의 왕이 되고, 《삼국사기》의 주몽은 고구려를 세웁니다.

그렇다면 왜 주몽도 동명성왕이라고 불렸을까?

《삼국사기》 고구려본기는 주몽을 시조 동명성왕으로 기록합니다.

그런데 그보다 훨씬 앞선 《논형》에서는 동명이 부여의 시조로 등장합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기록의 시대와 이야기 속 인물의 시대를 구분하는 것입니다.

 

《논형》이 먼저 기록되었다고 해서 동명 전승의 모든 내용이 주몽신화보다 먼저 만들어졌다고 확정할 수는 없습니다.

또한 두 인물이 같은 이름을 공유한다고 해서 실제로 동일한 역사적 인물이었다고 단정할 수도 없습니다.

 

부여와 고구려는 서로 무관한 나라가 아닙니다.

고구려의 건국 전승 자체가 부여를 중요한 출발점으로 삼고 있으며,

고구려 왕실은 후대에도 자신들의 기원을 부여와 연결했습니다.

 

이러한 관계 속에서 부여의 동명 전승과 고구려의 주몽 전승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거나,

후대에 연결되어 이해되었을 가능성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다만 어느 시점에, 어떤 과정을 거쳐 두 전승이 연결되었는지는 분명하게 확정하기 어렵습니다.

후대 사람들은 두 인물을 어떻게 이해했을까?

두 인물의 관계를 바라보는 방식도 시대에 따라 달랐습니다.

《삼국유사》에는 부여와 고구려의 건국 계보를 연결하는 기록과 해석이 남아 있습니다.

일부 후대 기록에서는 동명과 주몽을 하나의 계보 안에서 이해하거나 동일한 시조의 이름으로 받아들였습니다.

반대로 조선 후기에는 부여를 세운 동명과 고구려를 세운 주몽을 구분해야 한다는 견해도 제기되었습니다.

이처럼 두 전승의 관계는 단순히 이름이 같다는 이유만으로 해결되는 문제가 아닙니다.

문헌마다 두 인물의 출신과 건국 과정, 나라의 계보를 다르게 설명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이번 이야기에서는 《논형》이 전하는 부여의 시조 동명과,

《삼국사기》가 전하는 고구려의 시조 주몽을 각각의 중심 판본에 따라 구분했습니다.

두 신화가 닮았다는 것은 무엇을 보여 줄까?

두 이야기에서 강을 건너는 기적은 단순한 탈출 장면이 아닙니다.

왕의 위협을 피해 달아나던 영웅이 강을 건넌 뒤 새로운 나라의 시조가 된다는 점에서,

강은 이전의 삶과 새로운 왕권을 가르는 경계로 읽을 수 있습니다.

 

동물들의 보호 역시 비범한 인물이 여러 차례 죽음의 위기를 넘는 과정에 등장합니다.

이러한 공통점은 부여와 고구려의 건국 전승이 서로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음을 살펴볼 중요한 단서입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두 이야기가 완전히 동일한 신화이거나, 어느 한쪽이 다른 쪽을 그대로 베꼈다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오히려 중요한 질문은 따로 있습니다.

서로 다른 나라의 건국 이야기에서 왜 이처럼 비슷한 영웅의 모습이 나타났을까요?

부여의 동명과 고구려의 주몽을 함께 살펴보면, 고대 사회가 신성한 출생과 특별한 능력,

거듭되는 시련을 통해 새로운 왕권의 탄생을 어떻게 설명했는지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같은 이름과 닮은 이야기를 지녔지만, 각 문헌에서는 서로 다른 나라의 시작을 전하는 두 영웅.

그 관계는 앞으로도 더 깊이 살펴볼 만한 흥미로운 주제입니다.


 

9.  이전 이야기:

한국 신화 6. 주몽신화 | 버려진 아이는 어떻게 고구려의 시조가 되었을까?

 

한국 신화 6. 주몽신화 | 버려진 알에서 태어난 주몽은 어떻게 고구려를 세웠을까?

주몽신화는 고구려의 시조 주몽이 어떻게 태어나고, 부여의 기존 질서를 떠나 새로운 나라를 세우게 되었는지를 전하는 고구려 건국신화입니다. 한국 신화(Korean mythology / 韓国神話) 가운데서도

sinhwagidam.com

 

 


 

10.  다음 이야기 — 신라의 첫 왕 박혁거세

 

동명에 이어 다음 편에서는 신라의 건국신화를 만나보겠습니다.

 

신라의 시조 박혁거세 역시 평범하지 않은 탄생 이야기를 지닌 인물입니다.

 

그는 어떻게 태어났고, 신라의 여섯 촌은 왜 그를 왕으로 추대했을까요?

 

다음 편: 한국 신화 8. 박혁거세와 신라 건국


 

 

참고 자료

1차 자료

- 왕충, 《논형》 권2 〈길험편〉 — 중심 판본

- 진수, 《삼국지》 부여전의 《위략》 인용

- 범엽, 《후한서》 동이열전 부여국

- 간보, 《수신기》 권14

- 일연, 《삼국유사》 권1 「고구려」조 — 《주림전》 인용

- 《삼국사기》 고구려본기 — 주몽 전승 비교

 

원전 확인

-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 《논형》 〈길험편〉

https://db.history.go.kr/ancient/level.do?levelId=ko_016_0020_0010

-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 《삼국유사》 「고구려」

https://db.history.go.kr/ancient/level.do?levelId=sy_001_0020_0150_0060

 

이 글은 고대 문헌에 기록된 신화 전승을 소개합니다. 신화 속 사건을 실제 역사적 사실로 단정하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