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일본의 신화와 전설

일본 신화 8. 오오나무치와 이나바의 흰토끼 | 토끼를 구한 신은 왜 형제들에게 두 번 죽임당했을까?

by 신화기담 호월 2026. 11. 2.

이나바의 흰토끼는 일본 신화(Japanese mythology / 日本神話)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동물 이야기입니다. 이 토끼를 구한 젊은 신이 오오나무치(Ōnamuji / 大穴牟遅神), 훗날 오오쿠니누시(Ōkuninushi / 大国主神)라 불리는 신입니다. 이번 글에서는 《고사기》(Kojiki / 古事記)를 따라, 토끼를 구한 그가 형제들에게 두 번 죽고 두 번 되살아나는 이야기를 들려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이야기를 모으는 여우 호월입니다.

《고사기》는 이 이야기를 조금 이상한 문장으로 시작합니다.

오오나무치에게는 형제가 '팔십'이나 있었는데, 그 형제들이 모두 나라를 그에게 넘겼다고요.

그런데 바로 다음 장면에서 그 형제들은 그에게 짐 자루를 지우고 앞서 걸어갑니다. 그리고 얼마 뒤에는 그를 죽이려 듭니다. 한 번이 아니라 두 번이나요.

그렇다면 토끼를 구한 이 신은 왜 형제들에게 두 번이나 죽임을 당했던 걸까요?

판본 및 각색 안내

※ 이나바의 흰토끼와 오오나무치의 수난은 《고사기》 상권에 전해지는 이야기입니다. 이번 본편은 《고사기》의 사건 순서를 그대로 따랐고, 다른 문헌의 장면은 섞지 않았습니다. 원전에 있는 말은 뜻을 바꾸지 않는 선에서 풀어 옮겼고, 장면을 잇는 문장 일부는 이해를 돕기 위해 다듬었습니다.


[목차]


짐을 진 막내, 이나바로 가는 야소가미

형제 야소가미의 짐 자루를 지고 이나바로 향하는 일본 신화의 오오나무치

 

오오나무치는 이즈모에 내려온 신 스사노오(Susanoo / 須佐之男)의 먼 후손입니다. 앞선 이야기에서 스사노오가 야마타노오로치를 물리치고 스가에 궁을 지었지요. 그 집안에서 여러 대가 지나 태어난 신이 오오나무치입니다.

그에게는 형제가 많았습니다. 《고사기》는 그들을 야소가미(Yasogami / 八十神), '팔십 신'이라고만 부릅니다.

어느 날 야소가미는 모두 같은 마음을 품고 길을 떠났습니다.

이나바(因幡)에 사는 야가미히메(Yagamihime / 八上比売)에게 구혼하려는 것이었습니다.

형제들은 오오나무치에게 큰 자루를 지웠습니다. 짐꾼처럼 맨 뒤에서 따라오게 한 것이지요.


케타 곶의 벌거벗은 토끼

일행이 케타 곶(気多之前)에 이르렀을 때였습니다.

바닷가에 토끼 한 마리가 쓰러져 있었습니다. 털이 모두 벗겨져 맨살이 드러난 채였습니다.

앞서 가던 형제들이 토끼에게 말했습니다.

"바닷물에 몸을 씻고, 높은 산마루에 엎드려 바람을 쐬어라."

토끼는 그 말대로 했습니다.

그러자 바닷물이 마르면서 살갗이 바람에 갈라 터졌습니다. 토끼는 고통에 울며 엎드려 있었습니다.


와니를 속인 토끼의 사연

일본 신화 이나바의 흰토끼 이야기, 와니의 등을 밟고 바다를 건너는 토끼

 

맨 뒤에서 짐을 지고 오던 오오나무치가 그 모습을 보았습니다.

"어찌하여 울고 있느냐?"

토끼가 사연을 털어놓았습니다.

토끼는 본래 오키의 섬(淤岐島)에 살았습니다. 이 땅으로 건너오고 싶었지만 바다를 건널 방법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바다의 와니(和邇)를 속였습니다.

"너희 무리와 우리 무리 중 어느 쪽이 더 많은지 세어 보자. 너희 무리를 모두 데려와 이 섬에서 케타 곶까지 줄지어 엎드려라. 내가 그 위를 밟고 건너며 세어 주마."

와니들은 속아서 바다 위에 길게 늘어섰습니다. 토끼는 그 등을 밟으며 수를 세어 건너왔습니다.

그런데 막 땅에 내려서려던 순간, 토끼는 참지 못하고 말해 버렸습니다.

"너희는 내게 속은 거야."

그 말이 끝나자마자 맨 끝에 엎드려 있던 와니가 토끼를 붙잡았습니다. 그리고 토끼의 '옷', 곧 털가죽을 모두 벗겨 버렸습니다.

이름 메모 와니(和邇)의 정체는 확실하지 않습니다. 오늘날 일본어로는 악어를 뜻하지만, 고대에는 상어를 가리켰다는 해석이 널리 쓰입니다. 이 글에서는 원전의 이름 그대로 '와니'라고 부릅니다.

 

토끼는 울면서 말을 이었습니다.

"그래서 울고 있는데, 먼저 지나간 신들이 바닷물에 씻고 바람을 쐬라 하시기에 그대로 했더니 온몸이 상처투성이가 되었습니다."


강어귀의 물과 부들 꽃가루

오오나무치의 말대로 부들 꽃가루 위에서 상처를 치료하는 이나바의 흰토끼

 

오오나무치가 토끼에게 일러 주었습니다.

"지금 곧 강어귀로 가서 그 물로 몸을 씻어라. 그리고 그곳에 핀 부들의 꽃가루를 따다 깔고, 그 위를 뒹굴어라. 그러면 네 몸은 반드시 본래 살갗처럼 나을 것이다."

토끼가 그대로 하자, 몸이 원래대로 돌아왔습니다.

《고사기》는 여기서 한 줄을 덧붙입니다. 이것이 바로 '이나바의 흰토끼(稲羽之素菟)'이며, 지금은 토끼 신(菟神)이라 불린다고요.

회복한 토끼가 오오나무치에게 말했습니다.

"저 팔십 신들은 결코 야가미히메를 얻지 못할 것입니다. 비록 자루를 지고 계시지만, 당신께서 그분을 얻으실 겁니다."


야가미히메의 대답

토끼의 말은 그대로 이루어졌습니다.

야가미히메는 구혼하러 온 야소가미에게 이렇게 답했습니다.

"저는 당신들의 말을 듣지 않겠습니다. 오오나무치 신에게 시집가겠습니다."

짐꾼으로 데려온 막내가 신부를 얻은 것입니다.


테마산의 붉은 멧돼지, 첫 번째 죽음

테마산에서 불에 달군 바위를 받아 죽음을 맞는 오오나무치

 

야소가미는 분노했습니다. 그리고 함께 모의해 오오나무치를 죽이기로 했습니다.

그들은 호키국(伯耆国)의 테마산(手間山) 기슭에 이르러 말했습니다.

"이 산에 붉은 멧돼지가 있다. 우리가 위에서 몰아 내려보낼 테니 너는 아래에서 기다렸다가 붙잡아라. 붙잡지 못하면 반드시 너를 죽이겠다."

그러고는 멧돼지처럼 생긴 커다란 바위를 불에 달구어 산 위에서 굴려 떨어뜨렸습니다.

오오나무치는 그것을 받아 안았습니다.

그리고 달군 바위에 몸이 타 붙어 죽고 말았습니다.


어머니의 호소, 두 조개 여신

오오나무치를 되살리는 조개 여신 키사가이히메와 우무가이히메

 

어머니 사시쿠니와카히메(Sashikuniwakahime / 刺国若比売)는 울며 슬퍼했습니다.

그녀는 하늘로 올라가 가무무스히(Kamimusuhi / 神産巣日神)에게 호소했습니다. 가무무스히는 세상이 처음 열릴 때 나타난 신 가운데 하나입니다.

가무무스히는 두 여신을 내려보냈습니다. 키사가이히메(蚶貝比売)와 우무가이히메(蛤貝比売)입니다. 이름 그대로 조개와 관련된 여신들입니다.

키사가이히메가 무언가를 긁어 모으고, 우무가이히메가 그것을 받아 '어머니의 젖'처럼 발랐습니다.

그러자 오오나무치는 아름다운 젊은이가 되어 다시 걸어 나왔습니다.

해석 메모 키사가이히메가 긁어 모은 것이 조개껍데기 가루인지, 불탄 몸의 남은 부분인지는 해석이 갈립니다. 조개를 갈아 즙과 섞어 바르는 고대의 화상 치료가 반영되었다고 보는 견해도 있습니다. 원전이 분명히 말하는 것은 두 여신의 행동과 그 결과뿐입니다.


갈라진 나무의 덫, 두 번째 죽음

되살아난 오오나무치를 보고 야소가미는 다시 그를 속였습니다.

이번에는 그를 산으로 데려가 큰 나무를 베어 넘어뜨렸습니다. 쪼갠 틈에 쐐기를 박아 벌려 두고, 그 사이로 오오나무치를 들어가게 했습니다.

그리고 쐐기를 뽑았습니다.

나무가 닫히며 오오나무치는 그 안에서 짓눌려 죽었습니다.


나무를 가른 어머니

나무를 갈라 아들 오오나무치를 구해 내는 사시쿠니와카히메

 

어머니는 다시 울며 아들을 찾아 헤맸습니다.

마침내 아들을 찾아낸 그녀는 그 나무를 갈라 아들을 꺼내 되살렸습니다.

이번에는 하늘의 신도, 조개 여신도 없었습니다. 어머니가 직접 아들을 꺼냈습니다.

그리고 아들에게 말했습니다.

"네가 여기 있다가는 끝내 팔십 신에게 죽고 말 것이다."


기이국 오오야비코와 나무 갈래 사이의 탈출

기이국에서 나무 갈래 사이로 야소가미를 피해 달아나는 오오나무치

 

어머니는 아들을 기이국(紀伊国, 원문 木国)의 오오야비코(Ōyabiko / 大屋毘古神)에게 서둘러 보냈습니다.

그러나 야소가미는 끝까지 쫓아왔습니다. 그들은 활에 화살을 메긴 채 오오나무치를 내놓으라고 다그쳤습니다.

오오나무치는 나무의 갈래 사이로 빠져나가 달아났습니다.

그리고 이런 말이 그에게 전해졌습니다.

"스사노오께서 계신 네노카타스쿠니(根之堅州国)로 가거라. 그 큰 신께서 반드시 길을 정해 주실 것이다."


후일담 — 오오나무치의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두 번 죽었다 살아난 오오나무치는 이제 형제들의 손이 닿지 않는 곳으로 향합니다.

그곳은 그의 먼 조상 스사노오가 머무는 땅이었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그는 스사노오의 딸 스세리비메를 만나고, 다시 목숨을 건 시험을 치르게 됩니다.

그 이야기는 다음 편에서 이어집니다.


이야기 뒤의 이나바의 흰토끼

《고사기》에 전해지는 이나바의 흰토끼 이야기

이나바의 흰토끼와 오오나무치의 두 차례 죽음은 《고사기》 상권에 전해집니다. 712년에 완성된 이 책은 일본에 남은 가장 오래된 역사서입니다.

여러 판본이 경쟁하는 그리스나 한국 신화와 달리, 이 이야기의 뼈대는 거의 《고사기》 한 곳에 기대고 있습니다.

《고사기》

  • 시기: 712년 완성
  • 성격: 천황가의 계보와 신대의 이야기를 담은 역사서
  • 이번 본편에서 쓴 부분: 야소가미의 구혼 여행부터 오오야비코의 피신과 네노카타스쿠니로 가라는 말까지
  • 특징: 오오쿠니누시에게 이름이 다섯 있다고 밝히고, 이 이야기 시기의 그를 '오오나무치'로 부릅니다.

《일본서기》

  • 시기: 720년 완성
  • 성격: 《고사기》보다 8년 늦게 나온, 한문으로 쓴 공식 역사서
  • 차이: 《일본서기》에도 오오쿠니누시와 관련된 전승이 등장하지만, 《고사기》에 실린 이나바의 흰토끼와 형제들의 두 차례 살해·소생 이야기는 확인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 이야기를 말할 때는 '일본 신화에 따르면'보다 '《고사기》에 따르면'이 더 정확한 표현입니다.


'흰토끼'는 정말 흰 토끼였을까

원문은 이 토끼를 '소토(素菟)'라고 씁니다. 같은 장면 앞에서는 '벌거벗은 토끼(裸菟)'라고도 부릅니다.

'소(素)'는 '희다'로 읽을 수도 있고, '맨 것,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것'으로 읽을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흰토끼'가 털빛을 말하는지, 털이 벗겨진 맨몸을 말하는지는 연구자들 사이에서도 단정하지 않습니다.

널리 쓰이는 이름이라 이 글에서도 '흰토끼'라고 불렀지만, 하얀 털의 토끼였다고 확정할 근거는 없습니다.


토끼를 구한 신은 왜 형제들에게 두 번 죽임당했을까?

《고사기》가 밝히는 직접적인 이유는 하나입니다.

야가미히메가 형제들 대신 오오나무치를 택했고, 그래서 형제들이 분노했기 때문입니다.

흔히 '착한 신이 시기를 받아 죽었다'고 요약하지만, 원전은 그의 친절함 때문에 죽었다고 말하지는 않습니다. 토끼를 도운 일이 혼인으로 이어졌고, 혼인 경쟁에서 진 형제들의 분노가 살해로 이어졌다는 인과가 원전의 순서입니다.

그리고 이 질문에는 이야기 바깥의 답도 하나 있습니다.

《고사기》는 이 이야기를 '팔십 신이 모두 나라를 오오쿠니누시에게 넘긴 까닭'을 설명하는 대목으로 시작합니다. 짐을 지고 뒤따르던 막내가 결국 형제들 위에 서게 되는 이야기의 첫걸음이 이 두 번의 죽음인 셈입니다.


두 번의 죽음과 부활은 무엇을 의미할까?

① 원전에서 확인 가능한 사실

오오나무치는 두 번 죽고 두 번 되살아납니다. 그 방식은 서로 다릅니다.

구분 첫 번째 두 번째
죽음 불에 달군 바위에 타 죽음 갈라진 나무에 짓눌려 죽음
장소 호키국 테마산 기슭 산속
되살린 이 가무무스히가 보낸 키사가이히메·우무가이히메 어머니 사시쿠니와카히메
그 뒤 아름다운 젊은이가 되어 걸어 나옴 기이국 오오야비코에게 피신

두 번 모두 소생의 시작에는 어머니가 있습니다. 첫 번째는 어머니가 하늘에 호소했고, 두 번째는 어머니가 직접 나무를 갈랐습니다.

② 이야기 구조에서 읽을 수 있는 의미

이야기 앞부분에서 오오나무치는 상처 입은 토끼를 고쳐 주는 쪽이었습니다. 뒷부분에서는 그가 상처 입고 고침을 받는 쪽이 됩니다.

상처를 덧나게 한 것은 두 번 모두 형제들이었습니다. 토끼에게는 잘못된 처방으로, 오오나무치에게는 덫으로요.

또 이 이야기는 그가 홀로 이겨 내는 영웅담이 아닙니다. 토끼의 예언, 야가미히메의 선택, 어머니의 호소, 조개 여신의 손, 오오야비코의 도움까지 많은 존재가 그를 살립니다.

③ 연구와 해석에서 제시되는 관점

국학원대학의 해설은 이나바의 흰토끼 이야기를, 훗날 국토의 주인이 될 오오쿠니누시의 성격을 보여 주는 도입부로 봅니다.

두 번의 죽음과 부활을 성장 의례, 곧 한 번 죽고 새로 태어나야 어른이 된다는 통과의례의 흔적으로 읽는 해석도 있습니다. 조개 여신 장면에서는 고대의 화상 치료 관행을 찾는 견해도 있습니다.

다만 이것들은 후대의 해석입니다. 《고사기》가 직접 그렇게 설명하지는 않습니다.


관련 포스팅

오오나무치의 먼 조상 스사노오가 야마타노오로치를 물리치고 쿠사나기의 검을 얻은 이야기는 이전 글에서 살펴봤습니다.

→ 일본 신화 7. 쿠사나기의 검과 스가 궁전

 

일본 신화 7. 쿠사나기의 검과 스가 궁전 | 스사노오는 왜 신검을 아마테라스에게 바쳤을까?

쿠사나기의 검(草那芸之大刀 / 쿠사나기노타치)은 일본 신화(Japanese mythology / 日本神話)에서 가장 유명한 신검 가운데 하나입니다. 스사노오(Susanoo / 須佐之男命)가 야마타노오로치를 쓰러뜨린

sinhwagidam.com

 

다음 이야기

형제들을 피해 네노카타스쿠니에 들어선 오오나무치는 스사노오의 딸 스세리비메를 만납니다. 그리고 딸을 아내로 맞으려는 그에게 스사노오는 목숨을 건 시험을 연달아 내립니다.

다음 이야기에서는 오오나무치가 어떻게 그 시험을 넘어 지상으로 돌아오는지 따라가 보겠습니다.


참고 자료

1차 자료

  • 《고사기》 상권, 오오쿠니누시 대목(이나바의 흰토끼, 야소가미의 박해)
  • 《일본서기》 신대 상·하(비교용)

2차 자료